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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레이커스>장르적 재미에 충실한 신개념 뱀파이어물

지난영화 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1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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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데드>의 감독 스피어리그 형제

<데이브레이커스>란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극장 예고편을 통해서다. 왠지 B급스러워 보이는 화면(결코 싸구려스럽다는 표현이 아니다. 장르적 재미가 있어 보인다는 의미)과 에단 호크, 윌렘 데포, 그리고 존재감 자체로 B급이 느껴지는 샘닐이 나온다는 사실. 소재도 내가 꽤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는 뱀파이어물에, 기존 뱀파이어물과는 차별화된 몇 가지 변형된 코드를 차용한 듯해 보여서 <데이브레이커스>는 내가 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영화였다.

그러나 정작 내가 유심히 보아야 할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감독이 마이크 스피어리그, 피터 스피어리그 형제라는 점. 그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전작 <언데드>가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2009년 개봉한 수준 이하의 공포물을 말하는 게 아닌, 새로운 좀비물의 개념을 도입한 2003년 작품을 말한다. 네이버 영화소개 :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7713

기존의 좀비물과는 전개와 공식을 다르게 했던 <언데드>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작품이었다. 그리고 7년 후, 스피어리그 형제는 <데이브레이커스>라는 영화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이번에는 뱀파이어물이다를 외치면서.


2019년 뱀파이어들이 지배하는 세상

<데이브레이커스>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2019년 뱀파이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이 생존을 위해 뱀파이어들과 종족간의 대결을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단순한 스토리에 비해 세부적인 설정은 꽤 흥미로운 점이 많다. 20% 혈액커피를 블러드 벅스에서 테이크아웃 해서 먹는다든가, 블러드 뱅크에 혈액계좌를 개설해서 피를 공급받는다는 등의 설정은 기존 뱀파이어 영화들이 태양을 차단한 차를 운전한다 든가, 선크림을 발라 낮에도 활보하는 설정에서 상당히 발전을 한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지구의 주류종족으로서 살아가는 뱀파이어의 모습을 그렸으며, 모든 사회적 체계와 구성은 인간시절과 유사하게 돌아가는 미래의 뱀파이어 사회를 그렸다.

<데이브레이커스>가 그린 미래사회는 어찌보면 <나는 전설이다>나 <토탈리콜>의 미래사회와 유사한 점이 있다. 신 인류와 구 인류간의 갈등. 예전의 것들은 사라져야 할 전설일 뿐이며, 희생양이나 먹이일 뿐이다. 새로운 종족이 도래했을 때,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은 구태이며, 진화의 거부라고 여긴다. 도리어 <데이브레이커스>에서는 구 인류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도 있다. 구인류는 진화적 퇴보라고 여기는 자들, 또는 혈액독점권을 통한 자본주의의 독재를 추구하는 자들. '피'는 바로 권력이 되며 그것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는 권력자가 되는 세상이다. 마치 미래사회를 다룬 영화들 속에서 '물'이나 '공기'의 독점권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가진 모습에서 그 소재가 '피'로 변형이 된 것이다.

지금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석유'의 독점권 아래 놓여있는 문명의 뱀파이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호들갑스러운 발상일까? 하지만 석유가 공급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화 속 서브사이드와 마찬가지로 문명의 퇴보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서브사이드가 난동을 부리는 모습은 마치 석유가 공급이 되지 못해 폭동이 일어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데이브레이커스>의 단면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뱀파이어로 사는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를 꽤 흥미롭게 그렸다

<데이브레이커스>는 뱀파이어물로서 상당한 성과를 이룬 작품이다. 영화 속 뱀파이어는 DNA의 변형인 바이러스라는 설정이지만 신화적인 요소들도 그대로 적용했다. 거울에 모습이 안 보인다든가, 가슴에 말뚝을 박으면 재로 사라진다는 점. 십자가나 마늘이 등장하지 않은 게 도리어 흥미로웠다. <데이브레이커스>는 뱀파이어 본래의 코드를 비교적 충실히 잘 살리면서 새로운 설정들을 무난하게 삽입했다.

또한, 이야기 구조도 흥미롭다. 주류종족의 변화가 있을 뿐, 자본주의 사회나 빈부격차가 그대로 존재하는 사회. 그 속에서 살아가는 늙지 않는 불사의 몸을 지닌 뱀파이어는 과연 행복할까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은하철도 999>에서 기계인간이 되어 영원한 삶을 얻을지라도, 그 기계인간의 부속품을 얻기 위해 영원한 중노동을 해야 하는 모습은 과연 행복한 모습인지 그려보게 된다.

이렇게<데이브레이커스>에 꽤 좋은 평을 했지만, 영화는 단점도 존재한다. 뱀파이어에서 인간으로 돌아가는 설정이 너무나 작위적이고, 비약적이란 점. 이 단점은 꽤 크다. 하지만, 다른 흥미를 준 장점들이 컸기 때문에 덮어졌을 뿐이다. 개인적으론 <데이브레이커스>의 세계관이 흥미로워 그래픽노블 등의 원작이 있지 않나 했는데, 오리지널 각본의 작품이었다. 각본 역시 스피어리그 형제가 만든 건데, 아마도 너무 크게 벌인 일을 수습하기엔 영화적 상상력이 조금 부족했거나, 시간이나 자본 등 여건의 제약이 컸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잘 빠진 오락물, 추천한다

나에게 꽤 큰 재미를 준 영화 <데이브레이커스>. 왠지 10년 전, 기대하지 않고 보았다가 큰 재미를 느낀 <다크 시티>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데이브레이커스>는 재미도 있지만, 아쉬움도 있는 영화다. 하지만 장르물로도, 오락물로도 이이 정도면 꽤 매끈하게 잘 빠진 영화다. 화면도 시원시원하고, 사운드도 박력이 넘친다. 게다가 꽤 강도가 센 잔혹한 장면들은 장르물 매니아들에겐 만족감을 줄 요소들이다.

주류를 바꾸어서 재해석 해본 영화  <데이브레이커스>. B급 장르물로서 부족함이 없는, 추천하고 싶은 오락물이다. 인간이 원한 미래, 뱀파이어가 원한 미래, 이 미래들이 무엇이었는지 극장에서 확인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의 머리 속에 스피어리그 형제를 꼭 넣어두길 바란다. 다음 번에 이들이 어떤 작품으로 날 흥미롭게 해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혹여 A급 헐리우드 오락물을 생각하고 가신다면 그 기대는 당장 접기 바란다. 이 영화는 B급 장르물이다.

*2010년3월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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