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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1994, 뤽 베송) _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는 이름, 레옹과 마틸다

지난영화 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4. 2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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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1994, 뤽 베송) _ 스토리텔링 중심으로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는 이름, 레옹과 마틸다



마틸다는 알고 있었을까? 극 중 그녀가 말한 보니와 클라이드, 델마와 루이스처럼 레옹과 마틸다 역시 세월이 흘러도 극 안팎으로 회자될 줄을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뱅 단발머리에 짧은 핫팬츠, 초커목걸이, 떠 보이는 걸음걸이, 사연 많은 눈빛. 복도에 걸터앉아 혼자 담배를 피우고, 학교 전화에 서슴치 않고 부모 흉내를 내며, 동생의 복수를 위해 달러를 내밀며 살인을 의뢰하는, 사랑 아니면 죽음이라며 자신의 머리를 향해 장전된 총을 발사하는 마틸다. 내 머리에 그녀가 총알처럼 박힐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그녀가 다름 아닌 10대 어린 소녀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보통의, 으레껏의 불량스러운 캐릭터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가족들이 몰살당한 ‘고아’이자 죽은 동생의 복수를 꿈꾸는 ‘소녀’이자 클리너를 사랑한 어린 ‘클리너지망생’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 머리에 이 영화가 총알처럼 박힐 수 있었던 것은 이 어린 소녀 때문에 중년의 한 프로페셔널한 클리너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며 스스로 거세했던 감성, 남성성에 목숨까지 걸었기 때문이다.



♡ 직업과 스토리의 상관관계


해외판 제목인 <The Cleaner>, <The Professional>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 <레옹>에서 레옹의 직업이 살인청부업자라는 설정은 전체 영화의 톤과 스토리를 결정짓는 핵심 키워드다. 언뜻 봐도 20살 넘게 차이나는 아저씨와 소녀의 관계에 ‘클리너’와 ‘고아’라는 설정이 더해지면서 둘의 로맨스는 의외성과 필연성을 동시에 획득하고 있다.(여기서 필연성이라 함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두 사람의 정서적 합일과 복수를 꿈꾸는 마틸다의 욕망에서 오는 필요충분조건을 의미한다.)


내 집에서 나가달라는 레옹의 요구에 마틸다가 재빠르게 그의 문맹한 약점을 꼬집은 데도 둘의 운명적인 동거는 설득력을 얻는다. 여자와 어린아이는 죽이지 않는다는 레옹의 원칙 역시 레옹의 총으로 자살도 서슴치 않으려는 마틸다의 도발적이고 거침없는 행동에 차마 그녀를 버릴 수 없는 레옹의 심리적 근거로 작용한다. 이렇듯 의외의 두 사람을 한 시공간에 묶고 감정적으로 엮어 로맨스를 필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설정의 디테일이 중요하다. 어린아이는 죽이지 않는 살인청부업자와 복수를 꿈꾸는 고아 소녀의 협연만으로도 극적 긴장과 템포가 있는, 스타일리쉬한 오락멜로의 기초가 잡혀지는 셈이니까.






♡ 캐릭터 묘사와 씬설계



영화는 초반 레옹의 프로페셔널한 킬러의 모습을 강렬하게 보여주고는 곧이어 그의 단조로운 일상 스케치를 통해 고독하면서도 선한 그의 캐릭터를 경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김없이 난초 화분을 가꾸고, 우유를 마시며, 텅 빈 극장에서 혼자 감동하는 모습 등은 캐릭터 묘사 뿐 아니라 플롯에서 씨뿌리기 역할도 함께 한다. 특히, 후반부 마틸다가 학교 마당에 자리 잡아 난초의 뿌리를 내려주는 씬에서는 씨거두기의 정점처럼 전략적이면서 감상적인 씬설계가 돋보인다.

 


마틸다의 등장 또한 사랑스럽다. 철제 난간에 걸터앉아 흔들대는, 현란한 스타킹을 신은 어린 여자아이의 다리. 그러나 카메라는 단박에 환한 얼굴을 보여주는 게 아닌, 철제 난간에 가려진, 뱅 단발머리에 가려진, 소녀의 남다른 눈빛부터 보여주는 비주얼적 접근을 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다 지나가던 레옹에게 말을 건네는 그녀는 아버지에게 이르지 말라는 부탁을 하는데, 레옹은 그녀의 얼굴에 난 멍자국을 보고 만다. 자전거 타다 넘어졌다고 거짓말하는 마틸다를 보면 애처로운 감정이입을 유도하면서 후에 레옹을 아빠라고 서슴치 않고 둘러대는 그녀의 캐릭터를 단계적으로 형상화해놓았다고 보여진다. 다음날, 아버지에게 맞아 코피를 흘리고 있던 마틸다에게 레옹이 손수건을 건네주면서 이들은 처음으로 교감하며 소통한다.



사는 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아니면 어릴 때만 그래요?”

“언제나 힘들지.”


 



♡ 플롯과 캐릭터



플롯과 캐릭터는 스토리의 양대 축으로 영화 <레옹>은 비교적 균형감 있게 이를 전략적으로 구성해놓았다고 보여진다. 레옹이 문 밖에서 애절하게 초인종을 누르는 마틸다를 극적으로 구하게 되는 도발적 사건 이후 플롯은 외부적 사건이나 서브플롯의 개입 없이 줄곧 이 둘의 캐릭터로 채워지고 있다. 마틸다 몰래 복수해주는 레옹, 레옹 없이 혼자 복수하러 스탠스필드를 찾아 간 마틸다. 두 캐릭터가 살아 움직임으로써 둘의 내외적 욕망이 자연스럽게 플롯을 이끌고 있다. 쇼파에 앉아서 선글라스를 끼고 총을 옆에 둔 채 선잠을 자던 레옹이 다리를 뻗고 침대에서 자는 캐릭터의 변화만으로 불길한 사건이 전조되는 것처럼.


영화적인, 너무나 영화적인 로맨스지만 감정의 신빙성을 차곡차곡 쌓아서 스팅의 ‘shape of my heart'의 곡이 흘러나오는 에필로그에서는 누구도 단지 영화적이라고만 생각지 않을 것이다. 몰입의, 동화의, 울림의 순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옥에 티 같은 설정들도 간혹 눈에 띄나 결론적으로 웰메이드 액션멜로로 손색이 없다고 치켜세워주고 싶다. 최근 엘레지를 본 후 다시금 기억되는 레옹과 마틸다, 이 글은 그들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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