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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2009, 론 하워드)_볼거리많은 지적 스릴러

지난영화 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5.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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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는 읽었지만 영화는 보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 <천사와 악마>는 읽지 않았지만 영화는 보게 됐다. 'DJ변의 별볼일 없는 밤에'의 영화광고 속에서 종종 드러나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영화의 카피와 제목(천사 & 악마)이고 사실 영화의 겉포장 역시 그렇다. 한정된 시간 안에 예고된 살고를 막아야 한다거나 성경이나 고전 속 기호들을 이용해 시체를 훼손하는 연쇄살인법들은 <세븐>, <레저렉션> 등 스릴러 영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설정들이다. 소설 속에서는 좀더 다르게 묘사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소설을 읽지 않았으니 깊이 못 들어가겠고.

론 하워드 감독의 재주는 관객이 어떤 장면을 영화에서 보고 싶어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것을 최대한 포장해서 보여줄 줄 안다는 것이다. 초반 반물질 개발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랩의 내부를 천장부터 시작해 파이프를 따라가며 매끈하게 반물질까지 도착하는 카메라의 워킹은 역시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볼거리다. 또 영화 전반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 바티칸 시국의 풍경과 유물들, 조각들과 역사 속 비밀스런 코드를 해석해 가며 문제를 해결해 가는 총명한 두 주인공의 활약은 지적인 블록버스터를 원하는 관객들 입맛에 딱 맞는 미끼다.



배우에 관한 문제

미국의 아들, 톰 행크스가 로버트 랭던 교수를 연기하는 것에 찬반 여론이 맞섰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톰 행크스가 가지고 있는 자체 내공은 이제 영화에 신뢰감을 더해주는 존재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로버트 랭던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보여주는 '지대루 미국인'적 면모는 톰 행크스가 전작들을 통해 선보였던 캐릭터들과 묘한 시너지를 일으키기도 한다. 로버트 랭던은 종교를 연구하지만 신의 존재는 믿지 않고 냉철하면서 지적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 연구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은 역사를 논할 때 배제되기는 하지만 역사를 이용한 콘텐츠 개발이나 연구에서는 넘쳐나는 재치를 발휘하곤 한다. 미국식 창의력은 종종 역사와의 관계나 개연성을 무시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재밌어서 몰두하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패트릭 궁무처장을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했다는 건 다소 의외다. 이완 맥그리거가 신앙심과 합리성, 희생정신의 결정체인 궁무처장 연기를 할 때 관객들은 저 캐릭터가 분명 속에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지극히도 평면적인 인물을 굳이 우리의 이완에게 맡길 필요가 없을 테니까. 역시 영화는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긴 하지만 또 그런만큼 영화 후반에서 드러나는 반전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왜냐하면 그는 이완 맥그리거니까. 조금만 더 평범한 캐릭터와 필모를 가진 배우가 연기했더라면 영화의 반전이 관객을 놀래키는 데에 기여했을 거란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관객이 아무래도 덜 들었을테니 제작진이 고민했을 법한 지점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댄 브라운의 종교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성경의 실체를 냉소적으로 파헤치려는 시도들은 예전부터 있어 왔 창작자들에 의한 성경 뒤집기를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고 반기는 편이다. 피터 조셉의 다큐멘터리 <시대정신>이 성경 속 내용을 절대적으로 신봉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증명하는 데 주력했다면 댄 브라운은 성경 속에 등장하는 각종 표식들을 실존했던 인물들의 작품과 저작들과 결합하여 상상력을 불러 넣는다는 점이 재미있다. 특히 '과학'과 '종교'의 오랜 대립을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댄 브라운의 저작이 가장 많이 기여한 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과학'보다도 '종교' 쪽에 좀더 냉소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에 나오는 반물질은 천지창조를 가능하게 하거나 온 인류와 문명을 빨아들일 블랙홀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양면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 반물질을 이용해 종교의 권위를 드높이고 집단 내 결속력을 다지고자 했던 한 종교인의 욕망은 추악하게 변질되어 죄없는 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한 나라(바티칸)와 전세계에서 몰려든 신자들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위험에 처하게 했다. 오로지 신만을 향한 충성심과 교회에 대한 애정으로 그는 목숨을 걸고 폭탄을 가지고 승천한다. 그리고 거대한 폭발의 불빛이 도시를 밝힐 때 그 한가운데서 지상으로 강림한다. 흰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그는 도시와 시민들을 재앙에서 구한 천사로 보인다. 죽었을 것 같았지만 이내 살아난(부활) 그는 전세계 카톨릭 신도들의 신(교황)으로 추대받기 직전까지 이른다. 이 모든 코드에 종교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신을 향한 아집은 역사 대대로 과학을 탄압했고 수많은 살인죄를 저질렀다. 그들이 지닌 폐쇄성은 이미 신과 종교의 존재 의미를 더럽히기에 충분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신이며 종교란 말인가.

종교와 과학은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스위스 근위대 대장이 로버트 랭던에게 따진다. '우리의 교회는 배고픈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지만 당신의 교회는 뭘 하지?' 로버트 랭던은 대답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다. 교회의 바깥에서 교회의 선하지 못한 면을 주시하거나 지적하고 사람들이 배고프거나 헐벗지 않을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을 (과학으로써) 강구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언제나 옳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하여튼 중요한 건 신을 믿고 안 믿고가 아니라 신을 믿더라도 살인마저 '신의 뜻'으로 돌리는 꽉 막힌 신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종교는 숭고하고 아름답고 근엄하지만 믿음이 언제나 선할 수만은 없다. 과학이 신의 영역에 자꾸 도전하는 것조차도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과학이든 종교든 특정한 옷을 입거나 권력을 가진 소수가 아닌, 단 한 사람도 배제되지 않는 인류를 위해 복무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고단한 인류를 위해 제공하는 카드는 바로 '미키마우스'-로버트 랭던의 손목시계, 즉 '엔터테인먼트'다. 한편으론 고맙지만 그것 역시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

종교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S's 리뷰 별점
★★★★★ : 판타스틱!!!!!!
★★★★☆ : 이 정도면 Good~
★★★☆☆ : 본전 생각이 살짝.
★★☆☆☆ : 이거 누구 보라고 만든건가요?
★☆☆☆☆ : 이래저래 자원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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