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호넷>의 출발과 미셀 공드리의 만남
요즘 할리우드에서 유행하는 '슈퍼 히어로'는 21세기에 갑자기 이루어진 장르가 아니다. 짧은 미국 역사에서 신화가 필요했기에 나온 부산물로서, 웨스턴의 갱스터의 흐름과 일맥상통하는 면을 보여준다. 미국적 힘의 상징으로 슈퍼맨이 필요했으며, 어두운 도시의 영웅으로 배트맨이 필요했다. 사회적으로 부여받은 공권력과는 다른 성격의 힘을 보여주는 영웅들의 활약은 미국이 만들어낸 다른 형태의 가상적인 역사다. 그리고 장르 속에서 각각의 슈퍼 히어로 캐릭터는 능력만큼이나 다양한 배경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회의 흐름과 대중의 요구에 충실한 할리우드는 일찍부터 슈퍼 히어로들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과거 리처드 도너 감독의 <슈퍼맨>은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팀 버튼의 <배트맨> 역시 기록적인 흥행을 거두었다. 그러다 할리우드는 <배트맨과 로빈>이후에 잠시 영웅들을 잊고 지냈는데,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과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은 다시금 '슈퍼 히어로'장르가 대중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고, 존 파브로의 <아이언맨>으로 소재 발굴에 성공하더니, 결국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로 '슈퍼 히어로'장르가 걸작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후 결과는 폭발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들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그린 호넷>의 탄생도 슈트를 입거나 망토만 휘날려도 바로 제작에 들어갈 정도로 슈퍼 히어로에 매진하는 할리우드의 유행적 흐름에서 나온 결과물로 읽어야 한다. 과거 TV시리즈에 이소룡이 출연했던 작품이기에 만들어졌다는 건 홍모물에나 들어갈 문장이다. <그린 호넷>은 유행에서 나온 것이지 <아바타>같은 기술적인 기다림이나 이소룡을 향한 존경심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그러면 쏟아지는 슈퍼히어로 영화들 가운데 <그린 호넷>을 찾는 관객들은 무엇을 보고 싶었던 걸까? 슈퍼 히어로 장르가 주는 영웅주의일 수도, 블록버스터 영화가 주는 아드레날린일 수도 있다. 또는 주걸륜일 수도 있다. 여기서 대상을 조금 좁혀서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로 범위를 한정한다면 <그린 호넷>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은 당연히 감독 미셀 공드리다.
미셀 공드리는 <이터널 선샤인>만으로도 많은 영화팬들의 기억에 남은 감독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미셀 공드리의 아름다운 영상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각본가 찰리 카프먼의 꿈꾸는 감성 역시 기억하고 있다. 찰리 카프먼의 존재와 부재 여부는 미셀 공드리의 작품들 간의 비교에서 중요한 잣대다. 찰리 카프먼이 참여한 <휴먼 네이처>와 <이터널 선샤인>, 참여하지 않은 <수면의 과학>과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분명히 다르다. 이것은 영화적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다. 말하고 싶은 점은 찰리 카프먼은 미셀 공드리에게 큰 영향을 준 변수라는 사실이다.
찰리 카프먼이 없는 미셀 공드리. 그런데 그와 어울리지 않는 생소한 슈퍼 히어로 장르와의 만남. 이런 조건들은 "미셀 공드리는 슈퍼 히어로에 어울리는 감독일까?"라는 의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무한한 자유 의지를 보여주는 영웅의 모습
<그린 호넷>의 시작은 주인공 브렛 라이드(그린 호넷)의 어린 시절의 장면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훈육을 위해 아이가 가지고 노는 슈퍼 히어로 인형의 목을 분질러 버린다. 20년 후 아이는 슈퍼 히어로로 변신한다. 그리고 제일 먼저 아버지 동상의 목을 분질러 버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슈퍼 히어로가 된 사실이 아니다. '누구를 위한' 슈퍼 히어로인가, 라는 점이다.
영화에서 그린 호넷과 동료 케이토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 분출을 위해 영웅 놀이를 한다. 술과 여자로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부자 2세(그런 점에서 뚱뚱하고 멍청한 인상을 주는 세스 로건은 적역이라고 볼 수 있다)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각성을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우연한 기회에 차를 몰고 나갔다가 악당과 대결을 하고, 이것이 준 짜릿함에 매료되어 영웅 놀이에 매진한다.
영웅 놀이라는 면에서 그린 호넷은 배트맨이나 아이언맨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부자들이 자신들의 돈을 나름대로 쓸 방법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영웅놀이다. 어떤 면에서 영웅놀이는 그들에게 하나의 유희일 뿐이다. 그러나 구별이 필요하다. 그린 호넷과 배트맨 과 아이언맨은 유희를 통한 만족을 얻는 대상에 차이를 보여준다.
슈퍼맨은 공권력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선의 개념으로 접근한다. 배트맨은 다소 차이가 있는데, 그는 타락한 도시에서 공권력의 빈틈을 메우려고 한다. 물론 배트맨도 공권력에 협조적이다. 아이언맨은 조금 다르다. 배트맨에 비해 영웅이란 사실을 더욱 유희적으로 즐긴다. 그럼에도 아이언맨 역시 공권력을 붕괴시키거나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는다.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 등의 슈퍼 히어로들은 기본적으로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타인보다 자유도가 높은 행동을 하는 것이지, 시스템과 공존을 하며 시스템을 위협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그린 호넷>은 시스템에 대한 자세에서 앞의 거론한 영웅들과 상당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그린 호넷과 케이토는 어떤 목적과 의무가 없다. 완전한 유희로서의 즐거움만을 추구한다. 영화에서 그린 호넷과 케이토는 자신들이 싸우고 싶은 적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어디에서 범죄가 일어나는지, 심지어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들은 도시의 영웅이 아니라 악당에 가까운, 마음대로 자신들의 의지를 분출하며 노는 악동들이다.
이런 미성숙한 어른들이 즐기는 밤의 가면 놀이, 다시 말해서 시스템에 억압받지 않는 무한대의 자유를 즐기는 '영웅 놀이'가 주는 대리만족이 미셀 공드리가 찾은 탐구의 지점이다. 결국, 미셀 공드리는 슈퍼 히어로에 어울리는 감독일까, 라는 질문은 <휴먼 네이처>와 <그린 호넷>을 연결함으로 답을 찾을 수 있다. 데뷔작 <휴먼 네이처>를 통해 보여준 인간 본래의 모습에 대한 탐구는 <그린 호넷>에서 슈퍼 히어로들의 관찰로 나타난 것이고,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정의가 주는 무게감이나 이상적인 목표 따위는 없는 영웅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서 어떠한 구속이나 도덕적 명제에 시달리지 않는 자유인의 동경을 담아내려 했다. 미셀 공드리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그린 호넷>은 전혀 다른 장르에서 찾은 미셀 공드리 영화의 새로운 시작이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미셀 공드리가 만든 <그린 호넷>은 영웅의 결정판 또는 완전판이 아니라는 점이다. '슈퍼 히어로'장르는 절대적 존재, 고뇌하는 존재, 그리고 즐기는 존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의 요구를 충족 내지는 반영하고 있는 현재 진화 중인 장르다. <그린 호넷>은 그런 점에서 하나의 방향을 보여주었고, '슈퍼 히어로'의 장르적 외연을 확장시켜 주었다. 다음에는 어떤 모습의 영웅들이 나타날까? 우리를 위한 영웅일지, 자신을 위한 영웅일지. 시스템에 대해 어떤 시선을 두는 영웅일까 궁금하다.
★★★☆
*2011년 1월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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