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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영화리뷰

<레드라인>장인들이 만들어낸 레이싱 애니메이션의 진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1. 11.



레드라인 | Redline
코이케 타케시 | Japan | 2010 | 100'Asian Premiere | HD 


 미래의 어느 시간대, 어딘지 알 수 없는 행성. 그 곳에서 벌어지는 레이싱 대회 '레드라인'의 최종 예선 현장을 오프닝으로 잡은 <레드라인>은 강렬한 엔진음과 신나는 배경음악을 앞세우며 경쾌하게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의 장면을 조금 더 앞으로 돌려 첫 장면의 자막엔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 나온다. 영화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늘어놓던 자막, 그 마지막은 "어리석은 자들의 이야기"라고 끝맺음 한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무엇인가  느껴지는 대목. <레드라인>의 태생적 아픔이 스며든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현주소를 담은 슬픈 독백이며, 그렇지만 아직은 장인 정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선언적인 메시지다.

 <애니매트릭스>의 한 에피소드를 담당하며 주목을 받았던 코이케 타케시 감독의 지휘 아래 만들어진 <레드라인>은 7년의 제작 기간과 10만장 이상의 작화를 사용한 집념의 프로젝트다. 집념을 붙이는 이유는 <레드라인>이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보기 힘든,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경향으로는 희귀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품종이어서다.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은 극장용으로 기획되고 각본이 쓰인 오리지널 작품은 드물며, 코믹스, 소설, 게임 등 일정 수준의 인기가 검증된 작품으로 제작이 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말 그대로 "작품 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로 밀어붙인 작품 <레드라인>은 다르게 보면 요즘 세상에 정신 나간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7년 동안 제작이 되었다는 점에서 영화가 어렵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순수한 오리지널 극장판을 제작하는 일은 점점 드물어지는 경향에서 나온 <레드라인>은 어떤 정통적인 피가 흐르는, 복고적인 느낌마저 주는 독특한 애니메이션이다.

 소재로 잡은 것은 레이싱으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하나의 장르로 분류되는 분야다. 거칠고 남성적 매력이 강한 소재인 레이싱에 대한 여러 기억을 떠올리면, 영화로는 <분노의 질주>시리즈나 <스피드 레이서>, <데스 레이스> 등이 떠오르며, 극장 애니메이션으로는 <카>, TV 애니메이션으로는 <이니셜 D> 시리즈, <사이버 포뮬러> 시리즈 등이 기억 가까이에 있다. 그런 작품들 중에서 <레드라인>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은 <마하 고고>다. <마하 고고>를 이질적인 서양적 시각으로 해석했던 <스피드 레이서>와는 다른, <마하고고>의 재미를 계승한 성격이 강한 애니메이션이다(당연히 일본에서 만들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다르게 표현한다면 <마하 고고>의 정서에 <스피드 레이서>의 감각적 영상이 더해지고,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의 배경적 느낌이 겹쳐져 보인다.


 <레드라인>은 영화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5년 마다 열리는 배틀 레이싱 '레드라인' 대회가 열리는 로보월드. 로보월드의 정부는 숨기고 싶은 군사기밀이 있기에 자신의 국가를 관통하며 달리는 레드라인 대회를 막으려 한다. 그러나 레드라인 위원회는 대회를 강행한다. 레이서들은 달리고, 정부는 군인들을 출동시켜서 영화는 레이서 간의 대결을 군인까지 확대한 규모로 펼친다는 내용.

 레이싱에 참가하는 레이서들의 설정도 애니메이션에 걸맞게 상상력이 풍부하다. 전 대회 1위를 한 자는 차와 융합에 가까운 결합을 하는 로봇인간, 아이돌 레이서, 현상금 사냥꾼, 부패 경찰,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듀오, JP의 관심을 받는 소노시, 그리고 주인공 JP. <레드라인>은 이들의 차와 인물적인 매력을 섞어가면서 박력 넘치는 배틀 레이싱의 재미를 만들어간다.

 그 중 눈에 들어오는 캐릭터는 기무라 타쿠야가 분한 '친절한' JP 다. 영화에서 JP는 기계 인간, 휘황찬란한 복장, 종족을 알 수 없는 자들 가운데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케 하는 헤어스타일에 가죽점퍼를 입고 마치 할리 데이비슨을 모는 폭주족 마냥 행동하는 JP. 그는 <레드라인>에서 가장 레이싱의 기본적 정신에 충실한 레이서다. 어떠한 무기의 사용도 가능한 배틀 레이싱에서 무기의 장착을 하지 않고 오로지 가속장치만을 장착한 '트랜샘'을 몰며 질주하는 JP. 그는 '시대의 흐름'에 떨어진 레이서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하는 고전적 스타일의 레이서다. 고전적 스타일을 고집하는 JP는 영화에서 독특한 코드를 유지하기에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레드라인>을 만든 사람들이 가진 정신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JP에게 "무엇을 위해 달릴 것인가"는 질문은 그들 스스로에게 "무엇을 위해 만들 것인가?"란 질문이 된다. 상품 판매만을 겨냥한 작품이나, 저질스러운 작화, 기획과 상상의 한계 등을 보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만든다는 정신을 영화 안에서 풀어간 느낌이 강하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레드라인을 질주한다고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영화는 분명 단점도 존재한다. 레이싱이 펼쳐지지 않는 장면에서의 이야기가 단조롭고, 로보월드를 중심으로 만든 설정의 힘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영화에 허용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데 비해 이야기가 방만하다. 그러나 <레드리인>은 기본에 충실하다. 레이싱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며, 그 완성도가 높다. 

 '친절한' JP를 중심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는 남성적 매력이 강한 수작 애니메이션 <레드라인>.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거친 느낌의 그림체(일본은 요즘 미소년, 미소녀 위주로 표현이 가능한 그림체가 중심이다), 뛰어난 색감을 입힌 작화의 수준 등으로 알 수 있는 근래 보기 드문 놀라운 퀄리티는 높이 사야할 결과다. 또한 엔진음이나 배경음악 등도 잘 배치가 되어 뛰어난 몰입감을 제공한 점 등도 칭찬할 부분이다. 애니메이션으로 힘이 느껴지는 작품 <레드라인>을 멋지게 완성한 코이케 타케시 감독과 제작사 매드하우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일본 재패니메이션의 도전 정신은 아직 사라진 게 아니다.

★★★★

*제12회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개막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