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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32일>지킬 수 없었던 약속이 부른 파국의 슬픈 모습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4. 21.


멈추어 버린 시간 7월31일

1987년7월31일.
사람을 죽인 살인범 만수(박은수)는 장형사(김정균) 등의 경찰에게 쫓기게 된다. 경찰의 추격이 거세지자 만수는 자신의 5살 딸 꽃님을 집창촌에 맡기고 도망친다. 꽃님에게는 내일 데리러 온다는 약속을 하면서. 만수는 경찰에 체포되고, 장형사는 만수가 휘두른 칼에 다리 불구가 된다.

10여 년 후, 교도소에서 형을 마치고 출소한 만수는 꽃님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꽃님은 어디에도 없다. 꽃님은 다리불구가 된 장형사가 만수에 대한 복수심으로 섬에 팔아버린 상태다. 잃어버린 딸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만수, 자신을 팔아버린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꽃님, 다리를 잃고 모든 것을 상실한 채 만수와 꽃님에 대한 복수만으로 살아가는 장형사, 꽃님을 보살펴주면서 살겠다는 동욱. 시간은 이제 그들을 다시 한 곳으로 모이게 한다.


가족의 해체라는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

멈추어 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인 <7월32일>. 7월32일이라는 지킬 수 없었던 약속의 굴레에 갇힌 사람들의 증오, 미안함, 복수심, 사랑 등은 한 편의 슬픈 풍경화의 모습으로 그려지게 된다. 이 풍경화에서 가장 눈 여겨 볼 부분은 가족의 해체가 가져오는 비극.

만수와 장형사는 각각 가족의 해체라는 과정을 겪는 자들이다.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든, 우연이든. 이들에게 가족의 해체는 그들에게 상처를 남기게 된다. 그 상처는 너무나 깊고, 아픈 상처다. 지워지지도, 벗어나지도 못 하는 상처. 이들은 자신이 부른 결과에 대해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한 사람은 자책, 한 사람은 복수라는 선택을. 꽃님은 두 사람의 선택에 희생이 될 뿐이다.


인내와 아픔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하는 영화

<7월32일>에서 바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언제나 흘러가는, 변함없는 존재인 바다. 바다는 연속성이며, 영원함이다.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바다는 내일을 향해 꿈을 꾸어보게 하는 희망의 장소이다. 하지만 꽃님은 그 바다에 둘러 쌓인, 갇힌 존재다. 아버지와의 이별 후 멈추어버린 7월31일의 시간에 갇힌 꽃님. 그녀에게 바다는 자유를 꿈 꾸게 하는 공간이자, 자신을 가둔 보이지 않는 감옥과도 같은 존재다. 꽃님은 그 바다를 탈출하려 하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7월32일>은 고은 작가의 단편소설 <만월>을 원작으로 각색을 한 작품이다. 고은 작가의 원작을 보진 않았지만, 고은 작가 역시 원작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가족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비극적 파국에 대한 아픔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영화 <7월32일>은 분명 일정 정도는 그 아픔에 대한 느낌이 잘 전달되는 작품이다. 독립영화의 한계를 가지다 보니 녹음이라든가, 일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공간적인 부분 등은 아쉬운 면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전하려 했던 느낌에 대해서는 충실함이 보인다.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었던 부녀의 염원이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부서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 <7월32일>. 가족관계에 대한 독립영화적 고민을 보고 싶은 분에게는 추천할 만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단,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도 쓰라린 면이 있다는 점 알고 가시기 바란다. 꽃님이 철저히 파괴되는 모습들을 지켜보는 것은 상당한 인내와 아픔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척 슬프다.

★★☆

*2010년4월2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