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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웨이>이와이 슈운지 월드에서 보낸 러브레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4. 29.


이와이 슈운지 월드가 보내는 러브레터 <하프웨이>

첫 사랑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아련하다. 고백의 설렘이 있으며 만남의 떨림이 있다. 이루어지기 힘들기에 아쉬우며, 세월이 지난 후에는 미련이 남는다. <하프웨이>는 이런 첫 사랑에 대한 감정을 수줍게 담아 보낸 이와이 슈운지 월드의 선물이다. 누구에게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첫 사랑의 추억과 감성에 대한 러브레터.


가버려, 가지마

훗카이도에 사는 고3 수험생 히로(기타노 카이)는 동급생 슈(오카다 마사카)를 짝사랑한다. 우연히 히로의 마음을 알게 된 슈는 히로에게 사귀자는 고백을 하게 되고, 히로와 슈는 연인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히로는 슈의 친구 타스쿠(미조비타 준페이)에게서 슈가 동경 와세다 대학을 지망한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슈에게 동경에 가지 말라고 무작정 떼를 쓴다. 결국 슈는 와세다 대학을 포기하지만, 히로는 슈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과연 동경에 가는 것과 가지 않는 것, 어느 쪽이 행복한 걸까.

<하프웨이>는 전형적인 이와이 슈운지 월드의 영화다. 청춘들의 풋풋함과 일본 특유의 감성이 화면 가득히 그려졌으며, 그 작풍은 이와이 슈운지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림체 속에 담긴 영화 속의 첫 사랑은 단지 현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담겨있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감정의 서툰 투정이 있다.

히로는 그 나이대의 소녀답게 남자친구에게 질투심 어린 투정을 부리고, 언제나 함께 있고 싶어한다. 슈는 히로의 그런 모습에 당황하기도 하며, 사랑스러워 하기도 한다. 긴 인생의 순간 중 청춘의 챕터에서 히로와 슈가 함께 하는 순간. 이 순간에서 두 사람은 성인이 되기 전 고민을 함께 한다. 현재의 내 기분에 충실해야 할지, 아니면 진지한 미래에 대한 발걸음에 충실해야 할지. 그 고민은 "가버려"와 "가지마"란 상반된 마음의 울림으로 표현된다.


<러브레터>의 21세기 버전

<하프웨이>는 이런 상반된 마음의 울림에 대한 접근을 아주 감각적으로 한다. "왜 이해해 주지 못하는 거야"라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영원히 풀기 힘든 숙제 같은 고민을 핸드헬드 촬영을 통해 더욱 와 닿게 담아 낸다. 때로는 인물의 시점으로, 때로는 관찰자의 시점을 오가는 카메라의 시점. 시점의 불균형은 그만큼의 혼란함을 전달해주며, 움직이는 카메라의 흔들림은 불안함을 증폭시킨다. 어떤 명확한 내용적인 전개가 아닌, 청춘의 사랑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담아냄에 있어서, 이보다 더 효과적인 관찰법이 있을까. 이와이 슈운지는 바라만 봐도 가슴이 콩닥거리던 시절에 대한 묘사에 있어 이보다 더 적절한 방법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마치 <러브레터>의 21세기 버전이라고 하듯.

<하프웨이>는 <러브레터>와 이런 직접적인 연결을 할 만큼 많은 면에서 <러브레터>와 유사점을 보인다. 로케이션 장소가 같다거나, 화면의 구도가 비슷하다는 것이 카메라에 바로 담긴 유사점이라면, 그 속에 움직이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성격과 거기서 흘러 나오는 감성은 <러브레터>의 그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이것들이 이와이 슈운지 월드가 가진 코드들이니 당연한 것일까.


기타가와 에리코와 이와이 슈운지

최고의 각본가인 기타가와 에리코가 직접 메가폰을 잡고, 이와이 슈운지는 조력자로 나선 영화 <하프웨이>. 제목이 말해주듯 영화는 청춘의 중간역 어디쯤, 청춘과 성인의 중간 어디쯤, 방황의 순간 어디쯤에서 써 본 기억의 습작이며, 청춘의 편지다. 이 습작은 이와이 슈운지의 작풍이 그대로 살아있으며, 편지의 필체는 기타가와 에리코의 필체 그대로다.

<하프웨이>에는 이와이 슈운지와 기타가와 에리코의 코드들이 그대로 살아있다. 그렇기에 <하프웨이>는 이와이 슈운지 또는 기타가와 에리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즐길만한 선택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쓴 청춘의 모습이 아주 좋지는 않더라도, 꽤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어떤 흐름을 가진 이야기를 보고 싶거나, 감정적 결말을 명확히 담는 영화를 원하신다면 이 영화는 적절치 못한 선택이 될 것이다. 나는 어떻냐고. 솔직히 나도 이와이 슈운지 월드는 버겁다. 순수한 첫 사랑 이야기를 보기엔 난 너무 더럽혀진 존재인가 보다.

★★

*2010년4월2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