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페로의 동명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
어릴 적 누구나 여러 동화책을 읽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화책들에 대해 각자의 느낌을 가졌을 것이며, 각자의 해석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조금 더 발전을 해서 "나라면 이렇게 해볼 텐데"라며 작품을 해체와 재구성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작이 가진 틀을 바꾸는 상상을 해본다든가, 원작의 이후 이야기를 상상해본다든가 하는 경험. 이런 경험을 어릴 적엔 동화로 해보았다면, 나이가 들면 만화책,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면서도 하게 된다. <푸른 수염> 역시 그런 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아주 먼 옛날에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푸른 수염>은 이런 시작을 하는 너무나 유명한 샤를 페로의 동명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동화를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작품일까? 그렇다, 영상으로 옮겼다는 점은 맞다. 다만 동화의 틀을 독특하게 변형하여 옮겼다. 짧은 분량의 동화(집에 소장중인 샤를 페로 동화집을 다시 보니 큰 활자로 20페이지 분량이다. 아마 성인이 읽은 소설책으로 옮기면 10페이지 정도 분량일 듯 하다)를 영화로 만들면서 감독은 작품의 기본축으로 설정한 것이 동화 <푸른 수염>을 보고 느꼈던 감성이다. 여기에 새롭게 덧칠한 것은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 어릴 적 동화 속에서 보았던 이미지와 감성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새롭게 재구성하여 만들어낸 작품이 <푸른 수염>이다.
원작의 틀을 감독의 시각으로 재구축한 선택
중세 유럽, 대단한 권력과 부를 모두 가진 푸른 수염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와 결혼한 여자는 모두 사라진다. 푸른 수염은 이웃에 살던 두 자매 중 한 명과 결혼하기를 원하고, 거절할 수 없었던 그의 제안에 둘째 딸 카트린느는 결혼을 하게 된다. 예상 밖의 푸른 수염의 친절함과 따뜻함에 행복하던 카트린느. 푸른 수염은 카트린느에게 한 가지 금기사항을 지키라고 한다. 복도 끝 잠긴 방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금기시항. 그러나 카트린느의 호기심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며, 비극은 시작하게 된다.
<푸른 수염>은 절대권력의 신비한 남자 푸른 수염과 그와 결혼한 이웃집의 둘째 딸. 그리고 들어가서는 안 되는 금기의 방이 기본적인 소재다. 상징성이 많이 내포되었던 원작은 여러 해석적인 부분이 많았던 동화였는데, 감독은 이런 원작을 해체하여 재구성하면서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구성의 틀을 조금 달리하는 선택을 했다. 화자를 등장시킨다는 선택.
영화 <푸른 수염>은 두 자매가 화자로 나오는데, 그녀들이 읽는 동화 <푸른 수염>을 그녀들의 상상으로 보여주는 구성이다. 여기에서 아주 흥미로운 점이 보이는데 동화를 읽는 소녀의 이름도 카트린느이며, 동화 속 여주인공의 이름(원작에서는 둘째 라고만 나온다)도 카트린느라는 점.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 자신이 어릴 적 경험했던 그런 상상의 순간을 그대로 집어넣은 것이다. 감독이 동화책을 읽는 과정에서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모험을 했던 감정이입의 순간을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 낸 것이다.
푸른 수염과 카트린느의 금기에 대한 게임
원작이 가졌던 여러 소재의 상징적인 코드를 변형과 확장시켜 재구축한 작품 <푸른 수염>. 감독은 원작동화를 통해 무엇을 보았던 걸까? 이 의문은 상당히 대조적이면서도, 비슷한 푸른 수염과 카트린느의 모습을 통해 유추가 가능하다.
푸른 수염은 절대권력의 상징이며, 카트린느는 그 권력 아래 있는 자이다. 자신의 언니가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할 적에, 슬픔보다는 죽음의 미학에 더 관심을 보인 카트린느. 다른 사람들은 푸른 수염의 절대적 권력의 겉모습을 보지만, 그녀는 그 내면의 감정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그 내면을 이용하여 자신의 것을 취할 정도로 영민함을 보여준다.
절대권력인 푸른 수염은 카트린느에게 한 가지만을 요구한다. 절대 금기의 방에 들어가지 말라는 요구. 그러나 호기심의 욕망은 그녀를 참을 수 없게 만들고 그 방에 들어가게 만든다. 이것은 성경에서 하느님이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누리되, 절대 선악과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와 같은 구조이다. 아담은 하와의 유혹과 호기심에 못 이겨 선악과를 먹게 된다는 이야기에서 샤를 페로는 호기심이란 놀라운 악마에 주목을 했으며, 자신의 동화 속에 기본적인 코드로 집어넣었다. 푸른 수염과 카트린느는 신과 인간, 어른과 아이라는 상위권력과 하위권력의 상징화이다. 금기의 방은 둘 신과 인간의 금기의 선이다. 금기의 방을 들어감은 도전을 의미하며, 그 결과는 참혹한 심판이다.신에 대한 도전과 어른에 대한 도전에 대한 심판.
원작동화에게 바치는 멋진 독후감
마치 감독이 동화에 대한 독후감을 쓴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영화 <푸른 수염>. 감독은 작품에서 해피엔딩 또는 배드엔딩의 결론이나 어떤 의미에 대한 결론을 규정짓는 것을 거부했다. 오로지 자신이 원작동화에서 느꼈던 느낌을 전달하는 것에 치중하며, 그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이미지에 노력할 뿐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서 관객 나름대로 새롭게 재구축해보길 원하는 모습이었다.
<푸른 수염>은 원작을 읽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변형이나 느낌을 전달받기에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화면 가득 흐르는 멋진 색감과 묘한 이야기의 전개는 영화 자체로도 기묘하면서, 잔혹함이 충분히 흐르는 어른들만의 동화로 충분한 구성이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대한 잔혹동화 <푸른 수염>을 극장에서 보시길 추천한다.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은 동화 3부작을 구성 중이며, <푸른 수염>은 그 중 첫 번째 작품이었다고 한다. 다음 영화는 <잠 자는 숲 속의 공주>. 내가 읽었던 동화를 어떻게 변주 해서 만들어낼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2010년4월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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