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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영화리뷰

절반의 가능성을 보여준 해운대(스포일러 포함)

by 朱雀 2009. 7. 24.


<해운대>를 보고 난 뒤의 기분은 참 복잡다단하다. 먼저 <해운대>는 윤제균식 코미디가 분명하다. 예고편 등지에서 보여준 것처럼 윤제균식 코미디는 여전히 관객을 폭소하게 했고, 유효했다. 또한 할리우드 팀이 참여했다는 CG는 <투모로우>등과 비교해도 될만큼 훌륭했다. 물론 <투모로우>등과 비교하면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지만, 비교되지 않는 제작비를 감안하면 꽤 훌륭한 편이었다.


문제는 재난영화의 미덕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윤제균은 <해운대>에서 할리우드 작품과 달리 ‘재난’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사람에 집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산 해운대에 사는 사람들 말이다.


극중 설경구는 하지원의 아버지를 조업을 나갔다가 본의 아니게 사고로 죽게 만들었다. 그는 죄책감을 않고 하지원을 음으로 양으로 도우면서 마음의 정을 키워왔다. 쓰나미의 위험성을 알리며 동분서주하는 지질학자역의 박중훈은 전부인 엄정화와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지만, 차마 딸에게 자신이 아버지란 사실을 알리지 못한 상태다. 해양구조원인 이민기는 부산에 놀러운 강예원을 다소 엽기적(?)으로 구조하면서 인연을 맺어 알콩달콩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영화는 <투모로우> 등에서 평화로운 사람들의 삶과 유리벽 처럼 얇은 간격을 두고 치명적으로 벌어지는 천재지변을 끊임없이 부각시키지 않는다. 물론 박중훈이 상황실(?)에서 일본등과 연락을 주고받고 데이터를 모으며 경고를 하긴 하지만, 작품은 해운대를 둘러싸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엇갈린 인간 드라마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야구장에 하지원과 함께 가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떼를 쓰고, 정작 야구장에 와서는 술에 진탕 취해 이대호 선수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설경구의 모습은 윤제균의 전작에서 흔히 보아온 모습이다. 키스를 할때 이민기의 아랫입술을 깨물며 괴롭히던 강예원을 사랑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는 모습 등은 작은 드라마등을 연상케 한다.


문제는 쓰나미가 닥쳐올 때부터다. 물론 <해운대>는 나름대로 암시를 준다. 갑자기 바닷가에 게떼들과 새떼들이 대규모 이동을 해 뭔가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짐을 알려준다. 그러나 해운대 사람들은 그저 ‘왜 저리지?“하고 시큰둥하게 넘어가고 만다.


식상한 방법이지만 무당 등이 등장해서 시시때때로 ‘쓰나미가 몰려온다. 용왕님이 노하셨다’등으로 주위를 환기했으면 어땠을까? 박중훈 혼자서 외쳐대는 ‘메가 쓰나미’가설은 왠지 약해보였다. 그 자신도 아주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운대>가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실패했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관심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예산 문제였다면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비상위원회(?)등을 소집해서 그 안에서 서로 이야기하는 광경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과 위기감을 줄 수 있었다. 왜 그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해운대>는 윤제균식 코미디 위에 엄청난 위력의 쓰나미가 주는 강렬한 효과를 그저 얹었다. 하여 그냥저냥 볼만하지만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좀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드라마를 좀 더 제대로 녹였어야 했다. 쓰나미의 위력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쓰나미의 발생여부를 두고 첨예한 대립과 논란 그리고 과정에서 긴박감을 주었어야 했다.


물론 감독은 ‘블록 버스터가 아니라 휴먼 드라마’를 원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윤제균 감독의 혼자 작품이 아니다. 영화는 비록 감독이 거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많은 부분을 책임지지만, 공동의 작업으로 완성되며 팀웍이 절대적이다! 또한 어려운 국내 여건에서 무려 15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작인만큼 좀더 밀도 있게 그려냈어야 했다.


<해운대>는 거기까지 가진 못했다. 물론 윤제균식의 최루성 드라마는 위력을 발휘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일행을 구하기 위해 로프를 자르는 이민기의 모습은 가슴이 찡했고, 하지원을 살리기 위해 그녀의 손을 놓는 설경구의 모습도 그러했다. 또한 딸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는 박중훈과 엄정화의 모습도 나름 멋졌다. 그러나 뭔가 커다란 한방이 부족했다.


물론 <해운대>는 그동안 국내 영화계에서 말하던 ‘한국형 블록 버스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엄청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어디에 제작비를 썼는지 알 수 없던 작품이 즐비하던 현실속에서 나름 쓰나미를 비롯한 CG와 특수효과에 많은 공을 들여 현장감이 꽤 괜찮았다. 배우들의 열연도 <해운대>를 볼만한 영화로 만들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그런대로 봐줄만한 한국형 블록 버스터로 <해운대>는 기억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