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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화장실 (2005, 세자르 샤를로네)_슬픔을 이기는 믿음이 필요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6. 28.

아빠의 화장실 - 10점
세자르 샤를로네, 엔리케 페르난데즈

우루과이의 작은 마을 멜로에 교황 방문 계획이 알려지면서 마을에는 미지의 물건들이 유입되기 시작한다. 5만 명의 신도가 이동하리라는 사실은 5만 명분의 음식과 기념품이 필요하다는 의미. 인간의 존엄성과 결속에 대한 감동적이고 유쾌한 영화이다.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의 순방길에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해 더욱 흥미를 더하는 작품이다. 우루과이와 브라질의 국경마을 멜로, 교황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조용했던 시골 마을은 들썩이고, 사람들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돈을 벌 생각에 들뜬다. 햄버거, 소시지, 기념품 등 다양한 아이템들이 준비되는 가운데, 주인공 비토는 유료 화장실을 만들어 돈을 번다는 비상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화장실만 성공하면 아내의 밀린 전기세도, 딸아이의 새 라디오도, 그리고 자신을 위한 오토바이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는 비토는 눈물겨운 노력 끝에 돈을 마련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화장실을 짓기 시작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데, 과연 ‘아빠의 화장실’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 이 세상의 모든 아빠는 너무도 고단하다.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으며 식구들을 위해 밤낮 달리는 이 아빠는 교황이 마을에 찾아온다는 소식에 깜찍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모두가 관광객에게 음식을 팔 생각을 할 때 아빠는 그 음식들을 먹은 관광객이 그만큼 '싸야' 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거다. 교황이 다가올 그날을 기다리며 부지런히 소시지를 만들고 풍선을 불고 빵을 굽고 온 마을 사람들이 노동에 열중하는 장면은 처음엔 해프닝처럼 보여지지만 그들의 진지함과 염원어린 눈빛과 손짓이 더해지면서 점차 경건함을 띠어 간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멜로 주민들의 순수한 열망이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

화장실 짓는데 몰두하는 아빠를 바라보는 조숙한 딸의 꿈은 이 시골을 벗어나 아나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도시의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매일 라디오를 들으며 뉴스 읽는 연습을 하는 이 딸에게 아빠의 모습은 애처롭기도, 한심하기도 느껴지기도, 한편 숙연해 보이기도 하다. 화장실을 향한 아빠의 열정은 결국 아내와 딸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던가.



영화는 아빠를 자꾸 곤경에 처하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아빠와 친구들의 천진한 모습을 비춰주며 이들이 행복을 구하는 방법을 이미 잘 터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친구와 물을 나누어 마시며 자전거를 달리거나, 동네에서 술 한 잔 꺾거나, 부인과의 닭살스런 애정행각을 벌이거나 딸을 향해 투정(?)을 부리거나 하는 아빠의 이런 작은 행위들 안에서 이미 관객은 아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다. 특히 아빠가 오토바이를 시승하며 웃음꽃이 만연한 표정으로 양손을 좌우로 쭉 뻗은 채 도로를 달릴 때 그 모습에서 난 우리 아빠를 보았다.;; 카메라 렌즈를 새로 사거나 차를 바꾸거나 등등, 뭔가 굉장히 갖고 싶은 물건을 손에 넣었을 때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바로 그 표정!
훗, 아빠들이란...

저렇게 해맑게 웃는 순간이 있다는 건 행복하다는 증거다. 이유야 어쨌건.



영화는 비극과 희극을 합쳐 놓은 듯한 결말로 끝맺게 된다. 신이란 모든 이의 마음 속에만 있을 뿐이지, 현실적 차원에서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간의 믿음이 모든 기적을 만들어내는 거다. 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믿기 때문에 신이 있는 것, 결말에서 아빠와 아빠의 가족들은 그걸 깨달은 듯 하다. 스스로 행복해 지는 방법을 찾기란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이들에게 있어서 더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행복을 결정하는 건 물질의 유무가 아니라 단지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닐까. 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믿을 수 있는 마음을.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과 같은 풍경.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들어가기 전 티켓과 함께 종이비누를 받았다. <아빠의 화장실> 포스터 스티커가 붙어 있는 작은 종이비누 케이스가 앙증맞으면서도 현실적이고 누추하면서도 향기로운 영화의 내용과 참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에, 극장을 나오며 새삼 피식 웃었다.
이런 영화가 <트랜스포머>에 가려져 멀티플렉스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건 관객의 입장에서 분명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