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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영화리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10, 팀 버튼)_전반적으로 살짝 서운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3. 7.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8점
팀 버튼

더 이상 소녀가 아닌 19살의 앨리스(미아 와시코우스카 분)가 어쩌다 본의 아니게 또다시 들어간 이상한 나라는 예전에 겪었던 그 이상한 나라가 아니다. 십여년 전 홀연히 앨리스가 사라진 후 이상한 나라는 독재자 붉은 여왕(헬레나 본햄 카터)이 그녀 특유의 공포 정치로 통치하고 있었던 것. 물론 하얀 토끼와 트위들디와 트위들덤 쌍둥이, 겨울잠 쥐, 애벌레와 음흉하게 웃어대는 체셔 고양이 그리고 미친 모자장수(조니 뎁 분)는 붉은 여왕의 공포 정치 속에서도 정신없는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고 있다. 마치 어제 헤어진 친구를 오늘 다시 만난 듯 앨리스의 귀환(?)을 대환영하는 미친 모자장수와 그 친구들. 손가락만큼 작아져버린 앨리스는 모자장수의 정신없는 환대와 붉은 여왕의 공포 정치를 뚫고 이번에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거, 누구를 위한 영화?

팀 버튼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절대 고전 동화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듯 하다. 명색이 팀 버튼인데 동화를 고스란히 보여줄 수는 없고 팀 버튼만의 비주얼과 톡톡 튀는 감성을 보여주기 위해 동화를 비틀다 보니 종잡을 수 없는 짬뽕영화가 되고 만 느낌이랄까. 거기에 더해진 조니 뎁이라는 엄청난 소스는 <가위손>의 에드워드와 <찰리의 초콜릿 공장>의 윌리 웡카를 뒤섞어 놓은 듯한 묘한 외모에 정신없고 의미없는 중얼거림, 혹은 우스꽝스러운 '으쓱쿵짝' 춤으로밖에 개성을 드러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 이후의 앨리스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원작 이상을 뛰어넘는 스토리와 동화세계를 구현해 내고자 하는 욕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영화가 정작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어른들을 위한 것인지 의심이 가고, 원작 그 이상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 것인지 아니면 원작의 어느 페이지쯤에서 본 듯한 비주얼을 갖춘 캐릭터들(파란 드레스+금발의 앨리스, 조끼를 입은 토끼, 흰 여왕, 카드 병사들 등)만 단순히 나열하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4차원 소녀 캐릭터,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이라면 역시 3D 영화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입체감으로 '이상한 나라'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빅 피쉬>에서 본 희한하게 가지를 뻗은 나무들과 같이 팀 버튼의 몇몇 영화 속에서 본 듯한 그림을 묘하게 닮은 비주얼을 목격하는 재미 등이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영화 속 '이상한 나라'는 이미 경험한 <아바타>가 보여준 제 3세계 '판도라'의 느낌에 미치지 못해 상대적으로 시시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바타>보다 먼저 개봉했다면 훨씬 재밌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굳이 3D로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내가 팀 버튼의 동화적 감성에서 이제 멀어져 버린 것인가. 하긴, 내가 좋아하는 팀 버튼의 영화는 <빅 피쉬>의 무용담보다는 차라리 <스위니 토드-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의 우울함 쪽이었으니까. 또 성장기의 여자 아이들이 겪는 모험 이야기나 판타지 영화를 보더라도 <문 프린세스> 같이 공주같은 레이스 드레스 입고서 용케 숲속을 달리고 뒹구는 쪽보다는 <판의 미로>처럼 냉혹한 현실과 환상을 동시에 마주해야 하는 처절함 속에 놓인 소녀 쪽에 훨씬 공감이 가곤 했으니까.

화사하거나 밝기만 한 동화세계는 아니고 어딘가 흠험함이 도사리고 있긴 하다, 여전하게도.



하지만 이상한 악몽을 반복해 꾸며 '내가 미친 걸까요?'라고 묻는 어린 딸에게 '그런 것 같구나. 하지만 훌륭한 사람은 언제나 미쳐 있었단다'라고 말해주는 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멋졌다. 그리고 하루에 여섯 가지씩 불가능한 일을 상상하는 습관은 나 역시 따라해 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제안이다. 물론 내가 불가능한 일을 상상한대봤자 그 내용은 주로 남자나 금전이나 피부나 일이나 몸매에 관한 것이 될 것이지 '말을 하는 짐승'이라거나 '난 용을 죽일 수 있다' 따위일 리는 없겠지만. ..
문제는 역시 내게 있다. 어른들에게도 잃어버린 동심을 찾을 기회를 주는 팀 버튼의 영화가 좋았는데 이번 영화는 팀 버튼이 동화 속에 머물기 위해 지나치게 어른들을 유아틱하게, 비호감으로 그려놓았다는 것이 서운했던 듯.

조니 뎁 이야기

조니 뎁,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그에 대한 감상. 흰 얼굴에 컬러 렌즈, 붉은 파마 머리, 우스꽝스러운 랩이나 춤으로 무장한 광대같은 모습보다는 역시 <퍼블릭 에너미>의 완전 마초(이 역시 심하게 과장되어 있는 캐릭터이긴 하다만...)로 등장할 때가 훨씬 섹시한 듯. 하긴 이런 망측한 모자장수 캐릭터를 그다 덜 거부감을 주며 소화할 수 있는 배우도 없겠다만... (그는 앨리스를 사랑했던 걸까. 사실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앨리스가 더 큰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큰 배를 타고 떠날 때 갑판 위에서 조니 뎁을 닮은 젊은 선원이라도 등장해 둘이 만나게 된다면 좀 좋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끝까지 팀 버튼은 동심을 강요하는 결말로 심심하게 영화를 끝내 버린 것이다. ... 생각할 수록 서운하네.)

이렇게 야한 의상에 19살 앨리스란 설정이 도대체 왜 필요했던 거야, 변변한 로맨스 하나 없이?



분명 뛰어나고 재미있는 영화지만 기대에는 살짝 못 미치기도 하는 영화. 폐허로 변해버린 동화세계보다는 이제는 팀 버튼이 잔혹하고 우울하면서도 심미적인 런던으로 다시 돌아와주길.

그나마 가장 위트있었던 장면.

사설 1. 이건 영화 스틸을 살펴보다가 발견한 사진인데 아마도 영화 OST에 참여한 에이브릴 라빈이 시사회나 프로모션과 같은 행사에 참여한 장면인 듯. 일명 '미치광이 3총사'의 티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검정 드레스에 진한 아이메이크업, 금발 머리가 또 하나의 개성있는 앨리스 캐릭터 같아 보인다. 이런 캐릭터를 살린 앨리스의 외전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있을 듯. 팀 버튼의 앨리스라면 이 정도는 되어 줘야 했던 거 아닐까. (내가 그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사설 2. 사실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사람보다 때론 동물이 더 낫다'는 점이다. 애벌레 하나의 목숨마저 소중히 여기는 앨리스가 결국 괴물의 목을 베는 여전사가 되는 것도, 자기는 '살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괴물을 무찌르는 전사가 될 수 없다며 앨리스에게 그 역할을 미루는 흰 여왕도 얄밉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 이 슬픈 눈을 한 '개'는 붉은 여왕의 폭정에 괴로워 하면서도 처자식을 위해 주어진 임무를 다 하는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