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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내 마음>장편영화로는 부족한 이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4. 2.


탈모 남성을 전면에 부각시킨 설정의 흥미로움

<불타는 내 마음>의 포스터 속 키스 하는 남녀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아름다운 사랑? 아니면 슬픈 이야기? 여러 생각들을 가지시겠지만 내가 떠올린 것은 한 가지였다. "저 남자의 탈모 원인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 너무나 슬퍼 보이는 탈모 남자의 모습은 의상이나 배낭이 아니었다면 중년남의 연애담이라 착각을 일으킬만한 포스였다.

독립영화에서 로맨틱 코미디물을 다룬다는 것은 독립영화의 실험적인 면보다는 상업영화의 자본적인 면에 가까운 측면이 크다. 로맨틱 코미디 속 남녀관계에 실험적이거나 독창적인 걸 넣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독립영화라는 틀 속에서는 말이다. 상업영화는 자본 등을 투입해 이야기의 공간과 캐릭터를 확장시킬 수 있지만, 독립영화는 한정된 예산과 틀 속에서 싼 티를 내면서 나오는 영화다. 그런 환경에서 고급스러운 로맨스라든가, 볼거리 풍부한 로케이션은 어림도 없는 현실. 그렇다고 치열한 관찰로 남녀관계를 처절함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결론은 한 가지, 난장판 코미디(적어도 몸으로 웃기는 것에는 돈이 안 드니)를 전개하는 것이다.

이런 난장판을 위한 사전 포석은 탈모였다. 대한민국에서 탈모에 시달린다는 것은 절대 비정상은 아니지만(요즘 상당수의 젊은 남녀들이 시달리는 증상이니), 적어도 로맨틱 코미디에서 탈모 진행형 남자를 전면에 부각시킨다는 것은 상식의 가벼운 파괴다. 영화는 가벼운 상식 파괴를 통해 관객에게 웃음의 선전포고를 한다. 남은 것은 이게 전부일지, 아니면 더 보여줄 것이 있을 지의 문제뿐.


짝사랑 3년, 연애 3년. 병열에게 남은 것은 권태기와 탈모 뿐

여자에게 고백하자마자 차이는 남자의 슬픈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슬픔과 처절함으로 범벅 된 한 남자의 고군분투 연애담이다. 연애담의 주인공은 병열이며 대상은 보람. 병열은 커피전문점에서 만난 보람에게 한 눈에 반해버리고, 보람에게 3년 동안 스토킹에 가깝게 들러 붙어 결국 연애의 꿈이 이룬다. 그러나 그 후로부터 3년, 병열은 여전히 백수고 그에게 남은 것은 보람과의 권태기와 탈모뿐이다. 그리고 보람과의 권태기는 점점 악몽으로 치닫게 된다.

<불타는 내 마음>은 병열의 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지만, 이야기 소재의 대부분은 보람의 보람차지 않은 연애사이다. 그녀가 만난 남자들과의 연애 에피소드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본 병열의 시각. 영화는 연애를 지켜보면서 깨지라는 주문을 외치는 병열만으론 이야기가 부족하니, 짜증유발형 캐릭터 남자 2명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들이 얽히는 이야기는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난장판 개그로 전개된다.

이런 막장스러운 난장판 개그를 펼치는 <불타는 내 마음>은 마치 80~90년대 홍콩 코미디 영화에서 보여지던 난장판 코미디를 연상케 한다. 전체적인 플롯을 중요시하기 보단 순간순간 펼쳐지는 무대의 난장판 놀이를 더 중요시 한다. 난장판 놀이는 막무가내이기도 하며, 주먹구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을 보여주려는 뚝심은 대단한 수준으로, 이 정도에서 끝나겠지 하는 순간에 장면은 더 이어지며 어디까지 갈건 가를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촌스러움과 유치함으로 무장한 마당놀이는 일관성있게 기나긴 전개를 한다.


단편에서 장편으로 확장시키기엔 부족한 이야기 구조

길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는 영화가 가진 코미디의 재료들이 영화 상영시간을 채울 정도로 충분한 생명력을 가지지 못해서였다. 5분 정도의 웃음을 지탱할 코미디 요소를 10분 정도로 늘리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니, 영화는 재미를 주다가 슬슬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몇 번의 씬 들이 반복되다보니 영화는 전체적으로 늘어진다는 느낌만 들게 된다.

이 늘어짐의 문제는 바로 <불타는 내 마음>의 출발점을 보면 답이 나온다. <불타는 내 마음>의 최원섭 감독은 2007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보람이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로 관객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불타는 내 마음>은 이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시킨 케이스다. 그러나 감독은 단편에서 보여준 역량을 장편으로 이어가진 못한 듯 하다. 극장에서 만난 <불타는 내 마음>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중편 정도면 어울린 수준이지, 절대 95분의 러닝타임을 이끌 수준은 아니었다.


다음에는 더욱 완성도 있고, 노골적인 영화를 기대해 본다

실험적인 성격보다는 대중적인 코드에 더욱 눈높이를 맞춘 영화 <불타는 내 마음>. 분명 상당한 웃음을 주는 요소들도 있었고, 엽기적인 블랙코미디의 성격도 종종 보이는 흥미로움도 있었다. 또한 <불타는 내 마음>은 독립영화로서는 꽤나 상업영화의 코드를 잘 이식했다. 이 점들은 충분히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늘어짐의 아쉬움은 너무 크다.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갈 만큼의 탄탄한 구조를 가지지 못한 시나리오 속에서, 캐릭터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욕설을 과도하게 남발하고, 그것들은 의미 없는 장난의 반복 구조를 만들고 말았다.

영화는 단편에서 장편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조금 더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었다. 최원섭 감독이 다음에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에 대한 고민을 더욱 가진 후 작품을 내놓아 우리를 더욱 즐겁게 해주길 기대해 본다. 개인적 희만사항으로 다음에는 노골적인 막장 화장실 류 영화를 만들어서 내놓음이 어떨까 싶은데, 영화 속 전기충격기 장면에서 난 감독의 아름다운 변태스러움을 보았기 때문이다. 최원섭 감독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 탄탄한 화장실 류 영화 한 편 들고 나타나길 희망해 본다. 화이팅!

*<불타는 내 마음>의 엔딩크레딧을 보면 흥미로운 이름들이 보인다. 기획 이현승, 제작 박진표. 전혀 이런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영화에 참여한 사실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 분들의 내면에도 불타는 변태적 기질이 있었던 걸까?

★★

*2010년3월2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