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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달린다 (2009, 이연우)_거북이의 고군분투기, 그런데 토끼가 없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6. 11.
거북이 달린다 - 8점
이연우

하는 일이라곤 지역 발전을 위한 소싸움 대회 준비뿐인 시골마을 예산의 형사 조필성. 다섯 살 연상의 마누라 앞에서는 기 한번 못 펴는 한심한 남편이지만, 딸래미의 학교 일일교사 1순위로 꼽힐 정도로 마을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형사다. 소싸움 대회를 준비하던 필성은 강력한 우승후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훔쳐 나온 마누라의 쌈짓돈으로 결국 큰 돈을 따게 된다. 난생처음 마누라 앞에서 큰소리 칠 생각에 목이 메이는 조필성. 그러나 기쁨도 잠시! 갑자기 나타난 어린 놈에게 순식간에 돈을 빼앗기고 마는데, 그 놈은 바로 몇 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탈주범 송기태.

 희대의 탈주범을 눈 앞에서 놓친 필성은 모두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만 이런 시골마을에 송기태가 나타났다는 그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잃어버린 돈도 찾고, 딸래미 앞에서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에 직접 송기태의 은신처를 찾아 덮치지만 이번에는 송기태에게 새끼손가락까지 잘리는 수모를 당한다. 게다가 이 날의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예산서 형사들은 탈주범을 놓친 무능한 시골형사로 전락하고 필성은 형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돈, 명예, 그리고 마지막 자존심까지 빼앗긴 필성. 그 놈을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잡아 형사로서, 그리고 한 남자로서의 명예회복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는데…



느릿느릿 별일없이 흘러가는 충청도의 한 작은 동네에서 거의 빈둥거리다시피 널널하게 살던 조필성(김윤석)의 정신을 번쩍 깨워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마누라 비상금 훔쳐서 소싸움에 걸었다가 운 좋게 이겼지만 탈주범 송기태(정경호)의 손에 돈가방을 쥐여 준 채 코 앞에서 놓쳐버린 거다. 떳떳하지 못한 돈이라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하고 마누라의 구멍난 팬티도, 일일교사를 기대하고 있는 큰딸에게도 정말 면목 안 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조필성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왜?
쪽.팔.려.서.



그간 영화에서 흔하게 들어왔던 전라도, 경상도 사투리와 달리 느긋한 충청도 사투리는 TV 코미디 프로에서 본 이후로 오랜만인 듯 하다. 주인공 조필성을 비롯해서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주변인물들은 모두 밉지 않아 보인다. 이 영화 확실히 충청도 색에 묻어가려는 전략을 구상한 듯 하다. 느리지만 끈질긴 주인공의 성격과 달리 영화는 꽤 박진감 있게 흘러간다. 두 남자의 쫓고 쫓기는 상황극은 낯설지 않지만 김윤석의 쫀득쫀득한 연기를 보는 맛은 역시 최고다.

하지만 새로울 것 없는 스토리이기 때문에 더더욱 주인공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건만 탈진할 정도로 힘겹게 움직이는 김윤석에 비해 영화에 전반적인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할 정경호의 캐릭터는 다소 심심한 편이다. 너무 매끈하고 훤칠하고 시크한 데다가 자기 여자한텐 따뜻한 탈주범이라니, 우선 너무 멋지잖아..ㅡ.ㅜ;;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그토록 똥줄이 타도록 잡길 염원했던 연쇄살인범에는 못 미치더라도 '송기태'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쫙 끼치고 열이 확 받아서 관객이 같이 발을 동동 구를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솔직히 정경호는 탈주범이라기엔 심하게 준수하고 점잖아서 조금 갑갑한 느낌까지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대결구도가 제대로 안 살아난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확실한 건 그게 정경호가 연기를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인물의 비중을 좀더 조절하여 송기태라는 캐릭터에 훨씬 기운을 불어넣었더라면 균형잡인 투 탑 영화가 되었을텐데 오로지 이 영화에서는 김윤석 밖에 보이지 않는다.

탈주범이 이래도 되는건가..

범죄자를 미화시키다니! ㅜㅜ 저 뒤태..



이솝우화에서 거북이 캐릭터에 독자가 공감하는 이유는 얄미운 토끼를 이기고 싶어하는 거북이의 욕망에 대한 공감대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토끼'는 없고 거북이만 있다. 하지만 거북이가 워낙 뛰어나서 보고 즐기기에는 무리가 전혀 없다는. 그렇다면 아쉬워 하는 내 마음은 정경호의 비중 때문이라는 것? ;; ...부인하기 힘들다. 정경호는 역시 <허브>의 발랄한 교통경찰관 같은 역이 제격이라는.

이 영화에서 경찰은 신랄한 풍자까지는 아니고 그냥 적당히 희화화되어 있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비아냥은 즐겁지만 또 그만큼 씁쓸하기도 하다.



S's 리뷰 별점
★★★★★ : 판타스틱!!!!!!
★★★★☆ : 이 정도면 Good~
★★★★☆ :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할. 
★★★☆☆ : 본전 생각이 살짝.
★★☆☆☆ : 이거 누구 보라고 만든건가요?
★☆☆☆☆ : 이래저래 자원낭비.

뻔씨네 다른 리뷰 보기 :
2009/06/09 - [영화 프리뷰] - 거북이 달린다 - 거북이는 왜 달려야만 했을까? [프리뷰] - 이노

 

같이 봅시다!

이 시대 '가장'이라는 의무를 지닌 중년 남성들의 사회 내 위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우아한 세계>의 송강호는 조폭이고 <거북이 달린다>의 조필성은 경찰이지만 가정에서 아내와 자식 사이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닮아 있다. 우리 나라 아버지들 참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게 하는 두 영화.


눈에 불을 켜고 범인을 쫓는 형사와 범인의 두뇌 대결. 이 영화는 토끼 간의 대결을 보여 주고 있다.
2008/07/31 - [신씨의 culture 리뷰/영화] -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_긴장하기엔 너무 인간적인(스포일러 주의)

추격자 - 10점
나홍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김윤석의 추격 시리즈 1탄. 범인의 카리스마도 최고였고 긴장감도 최고. 물론 <거북이...>가 스릴러 장르가 아니니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다만.
2009/06/08 - [지난영화 리뷰] - 추격자 (2008, 나홍진)_한국'형' 스릴러의 계보를 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