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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스토리텔링

<체인질링>vs <그랜 토리노>, <체인질링> 판정승

by 마담앨리스 2009. 3. 29.

어떻게 클린트 이스트 우드 감독이 2008년에 동시에 두 작품을 연출한건지 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지만,
(개봉시기가 단지 겹친것 뿐이겠지만,
그의 나이기 80줄-1930년생-인 것을 감안했을 때,
놀랍기 그지없다.
캬.. 내가 80일때 저렇게 왕성할 수 있을까?)
어쨌든 최근들어 클린트 이스트우드 작품을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개인적으로 <그랜 토리노>를 더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 영화를 본 지금,
<체인질링>이 더 수작임을 알겠다.

내가 여자라서 그런가?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를 잘해서 그런가?

아니.
그것 보다는 감동의 깊이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체인질링>은 뜨거운 모성만을 힘으로 가녀린 여자가 세상의 폭력에 대항하는, 가슴을 저미는 이야기.
<그랜 토리노>는 한 노인이 자신의 삶을 용서하고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평화를 만들어내는(찾는) 이야기.

보통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혹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관객이(혹은 독자가) 바라는 방향을 무참하게 뭉개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그래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나는 이야기를 만드는(혹은 기획하는) 사람이지만
영화(혹은 소설 등)을 볼 때는
똑같이 관객(독자)의 시각이 된다.

그래서 같이 웃고 같이 우는데,
역시 <그랜 토리노>를 볼 때 울었고, <체인질링> 볼 때도 울었다.

눈물...
두 영화를 볼때 똑같이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의 질, 혹은 농도는 무엇인지 잠깐 생각해봤다.

만약 혀로 맛을 봤다면, 아마도 <체인질링>을 볼 때 울었던 눈물이 훨씬 짰을 것 같다.

가슴을 저민다는게 바로 이런 것?

저민다는 것은,
고기를 연상했을 때, 알맹이가 안보일 정도로 곱게 다진다는 것.

가슴이, 심장이 칼로 저며지는 것 같은 날카로운 고통.

<체인질링>을 보면서는 계속 눈을 다른 데로 돌려버리고 싶었다.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내가 아이를 가진 엄마였다면,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극도의 슬픔과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랜 토리노>는?
감동적인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박수 받아 마땅하다.
나무랄데 없이(아니, 만듦새는 좀 튀는 구석이 있었다. 나중에 MBC NG스페셜 '해피타임'같은 데서 문제로 나와도 되는 부분ㅋㅋ)
훌륭한 영화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이나 완성도, 캐릭터의 형상화 등 둘다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인데,
무엇이 감동의 차이를 낳는 걸까?
무엇이 눈물의 짠맛의 깊이를 다르게 만든 걸까?

실화.
나는 우선 이 단어에 50%를 건다.

실지로 안젤리나 졸리도 <체인질링>이 실화가 아니었다면 캐스팅 제안을 수락 안했을 거라고 말했다.
실지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드라마의 깊이에 있어서 차원이 다르고
또 흥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두번째, 모성. 여기에 나머지 50% 중 대다수를 건다.
처음부터 몰랐던 한 개인을 영화에서 처음 만나고 알아나가고,
그래서 동화하여 그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용서하고 평화를 찾는 이야기를 쫒아가며 감정이입하는 것 보다는,
처음부터 '모성'이라는 코드를 공유하고 있는 관객으로 하여금
모성을 강하게 자극하는 이야기가 훨씬 더 드라마틱하고 영화 초반부터 확 관객을 사로잡는 이야기라는 것.


마지막으로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는 특히 발군이었다.
그녀, 그냥 월드스타가 아니다.
그녀를 이 영화에서 다시 봤다. 그녀는 배우다. 당연한 소리지만.


둘다 나무랄데 없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고 잘 만들어진 영화.
그러나 어떤 영화가 더 파워가 있느냐를 생각해봤을때
들었던 생각들 잠깐 정리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