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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자 (2009, 최진호)_살인 그 자체의 트라우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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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1. 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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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자>

감독 : 최진호
주연 : 조재현, 윤계상, 박인환


고시원 생활 3년, 백수 재경(윤계상)은 드디어 교도관으로 취직하게 된다. 하지만 첫날부터 짓궂은 재소자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게 되는 재경. 어리버리한 그에게 10년 차 교사 종호(조재현)는 "짐승은 강한 놈에게 덤비지 않는 법"이라며 재소자를 다루는 법을 하나씩 가르쳐간다. 재소자들에 군림하는 종호나 사형수와 정겹게 장기를 두는 김교위(박인환)의 모습 모두 재경의 눈에는 낯설기만 하다.

 어느 날, 서울교도소는 일대 파란이 인다. 지난 12년간 중지됐던 사형집행이 연쇄살인범 장용두 사건을 계기로 되살아 난 것. 법무부의 사형집행명령서가 전달되고 교도관들은 패닉상태로 빠져든다. 사형은 법의 집행일 뿐이라 주장하는 종호는 자발적으로 나서지만 모든 교도관들이 갖은 핑계를 대며 집행조에 뽑히지 않으려는 사이... 사형수 장용두는 자살을 기도하고, 유일하게 사형집행 경험을 가진 김교위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만다.

 2009년 어느 날, 가로 2미터, 세로 4미터의 직사각형방. 그 곳으로 사형집행을 위해 되살려진 장용두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칠순의 사형수 성환. 그리고 교도관 재경, 종호, 김교위가 한자리에 모였다. 마침내 사형집행의 순간, 사형수들의 얼굴 위로 하얀 천이 씌어지자 묶인 두 발은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도관들의 마음도 죽어가기 시작한다...

이것은 사형제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사형을 집행하는 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강간이나 살인과 같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것일 뿐인, 하지만 그 법이라는 울타리 마저도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너무나 불완전한 것이라는. 그래서 법을 집행한다는 것만으로는 위안을 받을 수 없는,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일부 리뷰에서처럼 이 영화는 사형제도를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살인'이라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에 대해 알려주고 있지 않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고뇌를 하고 힘겹게 사형대의 버튼을 누른다. 사형수는 국민의 적이기도, 최고의 파렴치한이기도, 절대 신으로부터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쓰레기이기도 하지만, 어쩔 땐 나의 친구이기도 하다. 그들을 처단할 자격이 나에게 주어진다는 것, 합법적인 살인을 행한다는 것을 견디기에 인간은 너무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영화는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주인공인 재경(윤계상) 커플의 이야기를 평행하게 전개시켜 나간다. 재경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형을 집행하게 되었고 임신한 여자친구에게 낙태를 시켜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사형과 낙태, 그 둘은 엄연히 살인 행위에 속한다. 결국은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해야만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살인으로 살아남되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것이다.

배우들의 호연과 군더더기 없는 진행으로 영화는 지루하거나 산만하지 않다. 그냥 묵묵하게 살인을 집행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줄 뿐. 갈등과 고뇌, 죄책감으로 괴로워 하는 교도관을 연기하는 이는 박인환, 조재현, 윤계상이다. 각 세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만한 이들 3명은 저마다의 다른 방식으로 살인을 받아들이고 힘겨워 한다. 세대 간의 차이보다도 사실 중요한 것은 그저 사람에 따라 현실에 적응해 나가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늙은 친구를 떠나보내거나, 혐오스러워해 마지 않던 연쇄살인범은 반드시 사형당해야 한다고 믿었거나, 자신도 모르게 점차 '쓰레기' 인간에 대한 증오심이 생겨나거나 반응은 저마다 다르지만 어쨌든 '살인'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배우들의 연기, 연출 모두 무난~한. 내러티브 이외의 재미는 별로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한번쯤 볼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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