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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영화리뷰

왼편 마지막 집(2009) - 진정한 스릴러를 원한다면

by 사과랑 2009. 8. 28.


감독: 데니스 일리아디스

주연: 토니 골드윈(존 콜링우드), 모니카 포터(엠마), 사라 팩스톤(메리), 가렛 딜라헌트(크러그)

 

 부모와 함께 별장으로 놀러온 '마리'는 친구를 만나러 마을에 잠깐 나갔다가 '크러그'일당에게 붙잡힌다. '크러그'는 살인도 서슴치않는 탈옥범이다. 우여곡절 끝에 탈출을 시도하여 부모 곁으로 도착한 '메리'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크러그'일당들이 먼저 와 있었다.

 

 72년도에 '웨스 크레이븐'과 '숀S커닝햄'이 성경을 바탕으로 만든 '잉베르 베르히만'감독의 <처녀의 샘>에서 모티브를 따와 한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저예산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조악하기 그지 없던 이 영화는 개봉 후 일대 논란을 야기시켰다. 애초에 저예산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필름과 모든 것들이 조악하다보니 폭행, 강간씬이 스너프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할 만큼 논란을 일으키며 극장에서 급하게 막을 내리는 사태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논란은 바로 윤리적 모호함에 있었다.


원작과는 약간 변화된 부분들이 몇몇 있다.

딸의 생존이나, 새로운 인물이 창조된 부분들


 

 이런 영화가 이번에 새로 리메이크 되어 돌아왔다. 바로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왼편 마지막 집>. 게다가 이번 리메이크에는 초기 멤버였던 '웨스 크레이븐'과 '숀 커닝햄' 제작진으로 참여했다. 결국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겠다는 취지인 듯하다. 대체적으로 원작보다 나은 영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선 이 영화의 리메이크 작품이 나와서 다소 놀랍기도 하다. 21C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서 공포영화하면 먼저 떠오르는게 바로 신체훼손이다. 사지가 절단되고, 오장육부가 가출하는게 우선인 이 시대에 조악한 환경과 그러한 환경에서 빚어지는 극한의 사실성으로 논란과 호러매니아들에게서 각광을 받게된 원작 영화를 대체 어떻게 리메이크 하겠다는 건지...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시도에 대한 리메이크는 이미 앞에서 다해버렸다. '롭 좀비'가 <할로윈>을 만들면서 좀 더 서사성에 중점을 두었고, <텍사스 전기톱연쇄살인사건>과 <13일의 금요일>에서 원작을 능가하는 신체훼손을 보여주었다.

 그런 와중에 이 영화가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여기에 원작이 보여주었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법은 <테이큰>을 통해서 관객들이 수용하는 것은 윤리적 모호함과 정체성이 아니라 바로 카타르시스다. 이미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특히 악당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라는게 지금의 우리다.(물론 모두가 그럴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적어도 상식적으로는)


전작의 리메이크 작들도 변화는 시도했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추구했던 전작에 비해

이 영화는 간단함을 택하면서 노선을 달리한다.

 

 

 물론 이러한 점들을 공포영화의 대가이신 '웨스 크레이븐'과 '숀 커닝햄'이 모를리 없다. 결국 이 둘은 원작이 가졌던 사실주의를 빼고 빠른 편집과 고통을 클로즈업 하면서 하나의 오락영화로 만들어져서 나왔다. 원작이 가졌던 불편함은 사라지고 시종일관 악당과 싸우는 부모들의 활약과 '메리'가 당하면서도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 등을 통해 긴장감을 더욱 높였다.

 

 그로 인해서 스릴러 영화로 재탄생되어 돌아왔다. 결국 <할로윈>에서 <13일의 금요일>까지의 리메이크 영화들과 동일선상에 놓여져 있는 듯하면서도 한 층 진일보된 모습을 보여준다. 쓸데없는 것들을 빼고 오직 스릴러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한 층 더 몰입을 잘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긴장감은 사라지고 카타르시스만이 남게 된다.

 

 결국 영화는 뻔하게 알 수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제법 잘 만들어져있다. 마지막이 어떨지는 그 어느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지만 예상의 결과까지 가는 시점이 매우 긴장감이 있기 때문에 스릴러 영화로서는 매우 좋다.

 

 여기에 신체훼손은 덤이다.

 

 호러매니아들에겐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스릴러 영화를 좋아한다면 강추한다. 게다가 마지막의 카타르시스는 부모가 아니라도 느낄 수 있다.


 


폭력은 폭력을 낳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이 카타르시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폭력에 길들여진 건가?

단순한 영화임에도 마지막까지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이젠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 복수를 자행하는 시대다.(911테러를 보라. 물론 우리나라는 나도 잘 모르겠다) 부모가 자식의 복수를 위해 살인을 한다는 발상자체가 이젠 윤리적 정체성을 찾기엔 힘든 시대인 듯하다. 참고로 이 영화의 부모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들의 손이 피로 물들고 그 후에 각자의 일터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면 아이러니컬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끊임없이 솟구치는 분노 또한 아이러니하다.

 

 이 영화를 다보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테이큰>에서의 주인공처럼 싸움 잘하는 아빠가 되거나 의대공부를 시도해보거나.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 싶으면 딸은 낳지 말자는 생각. 그것마저도 안되면 수영과 달리기는 필수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