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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웨딩 (2008, 호라티우 말라)_첫맛과 끝맛이 다른 묵직한 영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8. 29.
사일런트 웨딩
감독 호라티우 말라엘 (2008 / 프랑스, 룩셈부르크, 루마니아)
출연 메다 안드리아 빅토르, 알렉산드루 포토신, 발렌틴 데오도시우, 알렉산드루 빈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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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감동적인 결혼식에 초대합니다!

루마니아의 작은 마을의 ‘이안쿠’와 ‘마라’는 마을에서도 유명한 닭살 커플이다. 둘의 결혼식은 마을 최고의 성대한 파티로 시끌벅적하게 마련되지만 하필 결혼식 당일 스탈린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련군은 일주일간 애도기간을 선포하며 파티, 집회, 웃음을 절대 금지시킨다. 눈물을 머금고 뿔뿔이 흩어진 하객들... 하지만 동이 틀 무렵, 마을 사람들의 조용하고 분산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비밀 결혼식을 시작하는데...

포스터만 보면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소동극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들의 침묵 결혼식에는 슬픈 사연이 숨어 있었다. 영화의 초반 이 세상 어느 곳보다도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한 동네였던 그 곳에서 그들이 숨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공산주의 확산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이었다.

영화의 시작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촬영하여 방송국에 파는 촬영팀이 한 남자를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를 따라 외진 길을 따라가던 촬영팀은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마을을 감싸고 있음을 발견한다. "도대체 이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념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욕정에 솔직하고 자유롭고 에너제틱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다소 발칙해 보일만큼 거리낌없는 언행을 주고받는 모습을 카메라는 오래도록 비춘다. 그리고 그들 안에 한창 뜨거운 커플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결혼식, 동네의 잔치가 벌어지려는 찰나 스탈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집회가 금지된다. 조용히 흩어졌던 마을 사람들은 해가 지자 신부의 집에 모두 모여들어 침묵 속 결혼식을 거행한다. 소리가 날까봐 포크와 나이프도 치우고 손으로 음식을 뜯어 먹으며 천으로 친친 감은 잔을 서로 부딪히며 박수치는 시늉을 하며 나름대로 파티는 즐겁다. 축배를 드는 인사말을 서로 귀에 속삭이며 한바퀴 도는 동안 묘하게 변질되는 단어들을 바라보는 기분은 마치 가족오락관의 한 코너를 지켜보는 심경과 같다. 하지만 새신랑이 악단 앞에 신부를 세우고 들리지 않는 음악에 맞추며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허공에 박수를 치며 눈으로만 축하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고서 신부는 못내 자신의 신세가 서글퍼졌을 게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생에 단 한 번 뿐인 결혼식인 것이다.


딸의 마음을 알아챈 아버지가 드디어 침묵을 깨고 한바탕 시끄러운 잔치를 벌인다. 잠깐이나마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들의 집에 공산당의 탱크가 들이닥친다.

영화는 비극적 시대 상황 속에서 순수한 사람들이 어떻게 상처받게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비춘다. 50여 년이 흐른 동네의 풍경은 폐허가 된 공장들 때문에 음산하기 그지없다.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직도 검은 옷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숨죽인채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그들이 겪은 억울하고 참담한 심경을 지금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옛날 아리따웠던 신부, 목에 반점이 있는 그 여인을 인터뷰하려다 말고 촬영팀 직원은 갑자기 쿡쿡 웃음을 터뜨린다. 하지만 그 웃음은 그때 순수했던 마을 사람들이 웃었던 웃음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때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을을 적시는 빗줄기와, 아직도 마을을 배회하는 흰옷에 화관을 쓴 사마란다의 유령이 유일하게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다. 시대는 변했고 세대도 바뀌었다. 그들의 아픔은 어느 곳으로부터도 위로받지 못하고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영화를 두 편 보게 됐는데 모두 서민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비추면서도 당시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순수한 개인들이 시대에 희생당하는 것, 그들을 어떻게 위로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영화를 통해서나마 그들의 숨겨진 사연들을 들여다 보고 공감할 수 있는 건 다행이지 싶다. <아빠의 화장실>도 그랬지만 특히 이번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판타지적 설정들을 집어넣은 것이 영화에 대한 인상을 깊게 남기는 데 한 몫 한다. 스틸 사진을 이용한 연출이나  슬랩스틱 코미디의 한 장면을 재현해낸 촌극 따위도 그렇거니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을 본 것만 같은 환상) 등 여러 장면이 기억에 남는아 비극을 더욱 부각시킨다.

영화 보는 내내 극장 안 사람들은 깔깔대며 웃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흘러나오는 처연한 음악은 우리 모두를 숙연해 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극장을 나와 감고당길을 걸어가며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우린 이 정도면 얼마나 행복에 겨운 삶들인지!

같이 봅시다!
아빠의 화장실
감독 세자르 샬론, 엔리케 페르난데스 (2007 / 브라질, 프랑스, 우루과이)
출연 세자르 트론코사, 버지니아 멘데스, 마리오 실바, 버지니아 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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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8 - [신씨의 culture 리뷰/영화/다큐멘터리] - [영화] 아빠의 화장실 (2005, 세자르 샤를로네)_슬픔을 이기는 믿음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