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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강>소재와 시대의 화음보다는 파열음이 크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9. 14.



만듦새의 과정에 주목하고 싶은 <살인의 강>

 <살인의 강>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여기에서 '실제'라는 대목에 너무 주목한 나머지, 지나치게 현실에 집착할 필요성은 없다. 영화의 모티브로 사건을 가져왔을 뿐이고, 이것들은 영화 안에서 새롭게 재구성되었다. 또한 영화의 이해를 위해 사건을 꼭 알아야 할 필요성도 역시 없다.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살인의 강>은 만듦새의 과정을 통해 주제를 만들어 간 방식이 흥미롭다. 배치. 즉, 이해보다는 시나리오가 행한 배열이 주목되었던, 다르게 말하면 이야기가 주는 울림보다는, 이야기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들인 '사건', '배경, '인물'을 통해 이야기와 주제를 만들어간 공정 방식을 눈 여겨 볼 만 하다.


두 개의 사건과 현대사의 다섯 지점, 그리고 두 명의 인물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밝힌 1980년대 중반 시골 마을 여중생 강간 살인 사건과 1990년 기지촌 여성 살인 사건. 영화는 이 사건들을 실제 일어난 시점과 같은 시간대인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놓는다. 그리고 두 사건은 두 명의 주인공인 승호(김다현)와 동식(신성록)의 '갈등의 시작점'과 '갈등의 증폭점'으로 사용된다. 

 두 개의 사건을 앞과 뒤에 배치하여 '성장'이란 시간적 흐름을 구축한 영화는 시간대를 다시 잘게 쪼개어 세부적 요소를 구성한다. 두 남자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잠시 멈춤을 시도한 시간은 1985년, 1988년, 1991년, 1997년, 그리고 2002년. 이렇게 만든 사건, 인물, 배경들로 구성된 이야기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간 속에서 변한 주위 환경과 흐르는 강. 17년의 시간을 통해 달라진 두 남자의 상황과 마음 한 켠에 가진 우정이라는 흔적. 한 여자의 죽음이 가져온 두 남자의 엇갈린 운명에서 관객은 변한 것과 변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일까 라고 묻는다. 

 <살인의 강>은 살인사건에선 스릴러적인 면이, 다양한 시간을 담은 면에선 시대극적인 면이, 그리고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에선 드라마적인 면이 도드라진다. 그 중 내가 <살인의 강>에 가장 기대했던 것은 스릴러적인 요소.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던 두 남자를 엇갈리게 만들었던 살인 사건의 비밀, 비 오는 날에 죽은 여자를 죽인 범인은 두 사람 중 누구인가라는 진실에 대한 대답이었다. 일정 정도 스릴러를 표방하는 <살인의 강>은 당연히 이 질문을 전체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누가 범인인고, 그날의 진실은 무엇인지를 계속적으로 묻는 과정을 통해서.

 그러나 영화는 진실을 묻는 질문이 다섯 개의 멈춤의 지점들과 만나면서 어떤 연결적인 의미를 만들지 못 한채 방황한다. 시간대의 단순한 이동과 사건의 진실을 단조롭게 묻는 상황의 연속. 다섯 개의 지점이 만들어낸 상황들은 동어반복적인 느낌을 줄 뿐이다. 

 분명 <살인의 강>에서 관통하고, 멈추었던 시간대는 현대사의 흥미로운 지점들이다. 1985년은 전두환 정권의 전성기였고, 1988년은 올림픽의 해이자 민주화의 호흡이 점점 빨라지던 시기였다. 또한 1991년, 1997년, 2002년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탄생 직전의 시기였다. 영화는 이런 현대사의 지점들에서 강한 공권력의 아픔이나 군부시절의 잔영, 시대는 변하지만 과거의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 등을 차용하려 노력한 흔적들은 있다. 하지만 적극적인 반영이 아닌 근방을 맴돌기만 하는 자세다. 무엇인가 말하려고 우물거리지만 입 밖으로 뱉어내질 못하는 느낌. 남는 것은 시대와 상관없이 겉도는 인물들과 계속적으로 흐르기만 하는 시간 뿐이다.


이야기의 덜어냄을 통한 장르적인 집중이 필요했다

 <살인의 강>은 현대사의 지점에서 나온 사회적 영향을 적극적으로 인물에 투영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작품이다. 그런데 다양한 현대사의 지점에서 나온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방식은 영화 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주는 TV 드라마에서 어울릴 만한 방식이다. 영화는  두 시간 남짓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져야 하는데, <살인의 강>은 그와 맞질 않아 보였다. 영화는 짧은 시간 속에서 여러 시간대와 인물들만 다루다가 산만해지기만 했다. 다르게 말하면 이야기의 덜어냄을 통한 장르적인 집중이 필요했던 영화다. 영화가 다룬 시간대와 인물을 줄이고 좀 더 하나의 장르적 성격에만 집중했어야 했다. 선택과 집중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정도의 의미 외에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었기에 아쉬움만 드는 작품이다.

*<살인의 강>은 <순수의 시대>로 작업을 하다 개봉을 즈음해서 제목을 변경한 모양이다. <순수의 시대>가 작품 자체의 내용에 눈을 맞춘 제목이라면, <살인의 강>은 근래 한국 영화의 유행코드인 스릴러에 눈을 맞춘 제목이란 생각이 든다. 솔직히 <순수의 시대>보다는 <살인의 강>이 관객의 눈길을 끌기도 하고, 호기심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순수의 시대>는 너무 진부하다.

★☆

*2010년9월3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