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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영화리뷰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중화사상에 매진하는 서극을 바라보는 착잡함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9. 30.



서극에 대한 좋은 기억과 안 좋은 기억

 서극에 대한 좋았던 기억. <영웅본색>과 <첩혈쌍웅>, <천녀유혼>과 <동방불패>등을 제작하며 홍콩을 아시아의 헐리우드로 만든 저력 . <촉산>에서 보여준 기술적 혜안. <소오강호>와 <황비홍> 등으로 열어낸 새로운 무협물의 경지. <서극의 칼>, <순류역류>, <양축>등을 오가던 다양한 영화들의 추억. 기타 등등.

 서극에 대한 안 좋았던 기억. <영웅본색 3>의 의외성. 헐리우드 진출 이후 몇 년. 과거에 대한 집착이었던 <촉산전>. 의미 없는 장르적 탐구 <여인불괴>. 기타 등등.

 많은 감독들, 특히 명감독 또는 거장이라 불리는 분들이 항상 좋은 영화를 만들었던 건 아니다.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걸작을 만들기도 했고, 그(그녀)의 작품이라 믿기 힘든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유는 다양하다. 비평적, 흥행적 실패 원인을 창작적 에너지의 고갈, 예산적 문제나 제작 시스템의 압박, 가타 다른 이유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명장의 반열에 오른 사람은 부지런하다. 이것이 단순히 작품의 숫자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한 작품씩 스스로를 위한 전진을 한다는 의미다. 물론 이것이 대중과 함께할 때도, 대중과 반대할 때도 있겠지만.

 서극은 부지런하다. 자신의 재능을 보여줄 시간이 부족하다는 듯 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서극의 놀라운 점은 무엇보다 미래를 읽는 안목이다. 다르게 말하면 미래를 만드는 능력. 그렇기에 성룡 등 액션스타들이 주름잡던 시장에서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었고, <소오강호>와 <황비홍>으로 무술영화의 폭을 넓혔다.

 그러나 서극을 복기하면 재능의 발현 만이 아닌, 재능의 낭비도 느껴진다. 그만큼 작품의 고저가 심하다. 특히 2000년대의 서극 작품에는 의문부호가 많이 붙는다. 이 전진을 무엇일까 하는 의문.


하늘과 통하는(?) 제국의 천재적 수사관 적인걸

 2010년 서극이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이다. 원제 <通天帝國之狄仁傑>은 하늘과 통하는 제국의 적인걸이란 의미. 제목에서 노골적인 냄새 풍긴다.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은 어느 시점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중국산 대형 영화(무협과 CG와 자본, 여기에 중국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더해진 대형 영화들)에 속하는 영화다. 중화사상이라는 계보를 이어가는 영화들.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의 주인공 적인걸은 당나라 시대 실존했던 천재적인 수사관이다. 영화가 역사의 페이지에서 어느 정도를 차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이 사실과 상상을 섞은 영화의 색채를 넘어, 거의 판타지적인 행보를 하기 때문이다. 요술을 사용하고, 경공술을 쓰며, 변신술까지 사용하는 판국에 역사적 사실에 집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영화는 역사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빌려왔을 뿐이다. 당대 최고의 수사관 적인걸, 그리고 역사상 최초이자 중국의 유일무이한 여황제 측천무후.

 영화가 잘 빌려온 대목은 장르적인 소재다. '천재적 수사관'이란 소재를 다룬 만큼 영화가 역사 속 사건을 다루는 추리물의 성격을 기본으로 해서 무협과 CG의 담은 시도는 새롭다. 그러나 신선한 소재를 빌려오긴 했지만, 무협과 CG의 결합구조는 엉성하다. 추리물의 형태를 가지면서, 액션을 가미하고, CG등으로 그것을 보완해야 할 형태여야 했는데, 영화는 CG 등의 볼거리에 치중하고 과잉스러운 액션에만 매진한다. 본래의 성격인 추리물로 만들어야 할 이야기의 힘은 중반 이후 실종되고, 그것의 부족분을 채우는 것은 허공을 날아다니는 배우들과 이야기와 상관없이 보여지는 앙상한 CG들이다.


서극이 만든 노골적인 중화사상 교육용 영화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 이야기 전개의 구조적 결함은 마지막 장면의 정당성을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중심을 추리로 본 것이 아니라, '측천무후'와 '하늘의 뜻'이란 메시지(?)로 본 것. 이것을 위해 인체자연발화 사건의 비밀을 판타지적 요소로 풀어버리는 등 추리물로서는 가지기 힘든 전개의 무리수를 둔다. 범인과 이유를 찾아가는 재미가 아닌, 마지막 장면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희생물로서의 사건들.

 더욱이 마지막 장면에서 측천무후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는 장면에서 보여지는 중화사상의 노골성은 심각한 수준이다. 하늘의 뜻이 측천무후이기에 그녀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시키며, 대를 위한 희생을 합리화하는 전개. 영화를 통해 현재를 위해 과거의 요소들을 가져다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대형 중국 영화의 모습에는 현재 중국 정세의 그늘이 있다.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의 정당성과 중국권 벨트를 형성하려는 야심. 이것을 위해 전면에 사용되는 영화 속 사상 교육. 한 시절 현실을 바라보고 영화를 만들던 장예모, 오우삼 등의 변신. 서극도 예외는 아니었다.

 224억 원짜리 사상교육 무협영화인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은 중화사상을 빼고 보더라도 영화적으로 그다지 즐겁지 않다. 소멸되어 가는 서극의 재능(소진이 아니길 바란다)을 확인하게 되고,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무협적 쾌감을 느끼게 되며, 한국에서 작업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해주기 힘든 CG 결과물을 보게 된다. 무엇 하나 만족감을 못 준다.

 그나마 위안을 얻는 것은 유덕화라는 배우의 건재함이다. 거의 30여 년 동안 정상급 배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예전과 비교해서 늙지도 않는 외모도 놀랍다) 유덕화. 그가 보여준 자기관리의 철저함에 대해선 존경을 표하고 싶다. 하지만 영화에 대해서는 어떠한 존경도 들지 않는다. <영웅본색>으로 시대의 아픔을 그리던 오우삼과 서극. 그들의 최신작 <적벽대전>과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 <적인걸 : 측천무후의 비밀>은 안 좋은 기억이 아닌, 슬픈 기억이다. 서극의 추락을 보는 슬픔.

★★

*2010년10월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