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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영화리뷰

마루 밑 아리에티(2010) - 살아라

by 사과씨네 2010. 9. 13.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목소리: 시다 미라이(아리에티), 카마키 류노스케(쇼우), 후지와라 타츠야(스필러)

 

 인간들의 물건을 '빌려서' 사는 소인들. 어느 날 '쇼우'가 할머니집으로 요양간 날 소인인 '아리에티'를 발견하게 되고, 몰래 살아왔던 '아리에티'가족은 뜻하지 못한 위험을 맞이하게 된다.

 

 '미야자키 히야오'가 영국의 '메리 노튼'의 소설 <마루 밑 바로워즈>로 영감을 얻어 만들게 된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금까지 지브리가 보여주었던 감성을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몸이 안 좋아서 할머니 댁에 요양을 간 '쇼우'는 '아리에티'를 발견하게 됩니다. 외로운 '쇼우'에게 '아리에티'는 반가움과 신기함이 더해가게 됩니다. 하지만 '쇼우'가 '아리에티'와 소인들에게 베푸는 호의는 소인들에게 전혀 호의로 다가오지 않죠.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소인들이 인간들에게 물건을 가져와서 살아가는데, 그들은 엄연히 '빌린다'는 말을 씁니다. 풍족한 물자를 지닌 인간들에게선 없어져도 모를 물건들이지요. 하지만 가정부인 '하루'에게 있어서는 엄연히 도둑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를 몰랐던 '쇼우'는 '아리에티'에게 호의를 베풀게 되죠. 하지만 소인들에겐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호의로 돌아오지도 않게 되고요. 하지만 이는 곧 서로 간의 '선물'로 변하게 되죠.

 

 '선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진정으로 주는 물건으로 의미가 되어지니깐요. 도둑질도 호의도 소인들에겐 일방적 공격에 지나지 않았죠.

 

 이번 영화에도 지금까지 나왔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나 <원령공주> 등의 작품처럼 소수자들이 나옵니다. '하야오'의 소수자는 '주성치'가 그리는 '소수자'와는 다소 다르죠. '주성치'의 소수는 다수에 합류하거나 소수 그 자체 만으로 다수 위의 소수가 됩니다. 하지만 '하야오'는 소수 그 자체로 그려내고 그 자리에 안착시킵니다.

 

 이는 곧 앞에서 말한 '선물'과 '안착'이 그대로 '어떻게든 살아라'라고 외치게 되는 셈이죠.

 <원령공주>에서 '살아라'라는 정언명령이 여기서도 변주 혹은 변형되어 한 번 더 외치는데요. 이는 이 영화의 전반에 걸친 큰 주제가 됩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하야오'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진 않았지만 <물위의 포뇨>에서 큰 실력을 인정받은 '히로마사'에 의해 대신 나타나게 되죠. 어차피 각본과 기획을 '하야오'감독이 맡았으니 크게 달라질 점도 없지만요.

 


누군가에게 펼치는 호의는

상대방을 생각치 못할 때 악의가 될 수도 있다.



각종 생각치 못한 도구를 활용하는 장면이나

이들이 생활하는 환경을 그린 배경은

놀라울 정도의 섬세한 디테일이 들어가있다.



재미있는 것은 '스필러'

그는 '코난'의 친구를 닮았다.

<코난>과 <원령공주>, <폼포코>의 합작이자

현실과 판타지에 대한 <토토로>와 <마녀 배달부 키키>의 연장선

참고로 '스필러'의 목소리를 '타츠야'가 맡았더군요.

별로 말한 기억이 안날 정도로 대사없는 캐릭터인데 말이죠.

 





 이 영화는 2D라는 장점을 아주 극대화 시킵니다. 현재는 3D와 4D가 대세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2D만큼의 감성있는 색을 나타내긴 힘듭니다. 수채화풍의 배경이나 소인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환경을 나타내는 디테일은 그 어떠한 3D보다도 섬세함을 그려내죠.

 

 지브리와 픽사가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의 방식이나 디테일, 감성은 현저하게 틀려도 둘 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번에도 확실해졌습니다. 딱딱하고 차가운 3D보다 좀 더 따뜻한 색채의 2D의 감성을 맛보기엔 딱 좋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남습니다. 이전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랑 별 다른 차이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확실하고 이야기는 엄연히 틀리지만 결국 동어반복을 할 뿐이라는 거죠.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처음 본 이들에겐 좋은 영화가 될 지언정 지금까지 봐온 이들에겐 그저그런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그저그런 내용도 즐겁게 봐 줄 수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요. 전 개인적으로 즐겁게 봤습니다.


# <원령공주>에서 외친 '살아라'는 당시 시대를 살아가던 차가워진 사회 속의 일본인들에게 말한 외침이었다면 이번의 메세지는 과연 누구에게 말한걸까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만화가와 애니메이터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이가 누구였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 메세지를 받아들이는 관객에게 달렸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