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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백을 하면>

최신영화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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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솔직한 고백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조성규 감독의 데뷔작 <맛있는 인생>을 정말 맛없게 봤다. 지나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그 영화를 '감독이란 자리를 탐하는 제작자의 치기 어린 행동이 낳은 불량식품'이라 여겼다. 굳이 재능 없는 자의 영화를 확인하는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하에 그의 두 번째 영화 <설마 그럴 리가 없어>는 건너뛰었다. 그리고 그는 세 번째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을 내놓았다. 난 절대 볼 일이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코웃음을 쳤다.


극장에서 <내가 고백을 하면>의 예고편을 만났던 순간, 내 생각에 작은 균열이 일어났다. "이거 재미있어 보이잖아"란 생각이 들다니. 그것도 불량식품이나 만드는 감독으로 여긴 조성규 감독의 영화에 말이다. 결국, 나는 <내가 고백을 하면>을 보았다.


<내가 고백을 하면>은 강릉이 좋은 서울의 남자 인성(김태우 분)과 서울이 좋은 강릉의 여자 유정(예지원 분)이 서로의 필요 때문에 주말마다 각자의 집을 바꾼다는 설정이다. 


강릉으로 가는 영화감독 인성은 외부의 반응에 지쳐있는 남자다. 첫 번째 영화의 평가는 차가웠고, 다음 영화의 진행은 더디기만 하다. 일에 치인 그에게 강릉은 조용하게 머물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다. 반면 서울로 오는 간호사 유정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지쳐있는 여자다. 유부남을 사랑했기에 겪은 슬픔을 극복하고자 도피의 방법으로 택한 것은 서울에 가서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 그녀에게 서울은 유일한 낙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두 사람이 집을 바꾼다는 설정에서 누구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2006년 작 <로맨틱 홀리데이>를 떠올릴 것이다. 휴가 기간에 각자의 집을 바꾼 두 여자가 달라진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는 내용의 <로맨틱 홀리데이>에서 <내가 고백을 하면>은 '자리바꿈'의 모티브를 가져온다.


<내가 고백을 하면>의 '자리바꿈'의 모티브는 <로맨틱 홀리데이>보다 적극적이고 빈번하다. 주말마다 서로의 집을 바꾸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간에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기묘한 동거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두게 되고, 관심은 호감으로, 호감은 사랑으로 발전하는 단계를 재미있게 밟아간다.



조성규 감독의 데뷔작 <맛있는 인생>엔 분명히 홍상수 영화를 향한 흠모가 느껴진다. 그렇기에 <맛있는 인생>엔 쉬이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홍상수 스타일'이 쉽사리 근접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도 나타난다.


이후 조성규 감독은 두 번째 영화 <설마 그럴 리가 없어>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강릉이란 공간을 무대로 영화를 내놓았다. 이번엔 달랐다. <맛있는 인생>은 그저 강릉에서 먹고, 마시며, 노는 것만 보여주었다. 더욱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보이는 것만 의식하는 영화였다. 그것과 다르게 <내가 고백을 하면>에는 목소리의 진정성이 스며들어 있다.


<내가 고백을 하면>은 "이번엔 분명히 성공할 자신이 있습니다, 믿고 투자해주세요" 라는 인성의 대사로 시작한다. 이것은 조성규 감독이 우리에게 말하는 목소리다. 이처럼 <내가 고백을 하면>의 곳곳엔 감독 자신의 실제 이야기와 입장이 담겨 있다. 


영화 속에서 <맛있는 인생>을 향해 영화평론가가 내린 냉정한 평가와 별점은 실제 받았던 평가이며, 한산한 극장과 썰렁한 관객의 반응은 과장이 아닌 현실 그대로의 재현이다. 또한 "이번에 안되면 삼진 아웃" 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조성규 감독이 처한 입장이 드러나고, "영화 대박 나면 다 죽었어!" 엔 그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자신을 희화시킨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안 좋은 소리만 해도 대뜸 화를 내는 것이 사람 아닌가. 그런데 자기와 자기의 영화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는 것은 조성규 감독이 진일보했음을 증명한다. 조성규 감독은 <내가 고백을 하면>을 통해 <맛있는 인생>에서 부족했던 바를 깨달았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결코 감독이란 자리를 욕심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 필사적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결심을 보여준다. 


홍상수를 부러워했던 <맛있는 인생>에서, 스타와 일반인의 사랑을 다룬 <설마 그럴리가 없어>를 경유한 후에, <내가 고백을 하면>에 이르러 조성규 감독은 비로소 자신의 영화적인 역량을 증명해냈다. 이제는 내가 조성규 감독에게 고백할 차례다. "당신의 영화는 좋았습니다. 당신을 이제 감독으로 바라보겠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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