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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최신영화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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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최초의 한국 영화 <의리적 구토>가 상영된 이래로 수많은 한국 영화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이 중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도 있었고, 쓰레기라는 오명을 쓴 채로 쓸쓸히 사라졌던 영화도 있다. 


쏟아져 나오는 많은 한국 영화들은 각자의 이름인 제목을 가지고 있다. 인상적인 제목들도 많지만 평범한 제목이 많다. 어떤 제목들은 너무 비슷해서 헷갈리기도 한다. 


<엄마는 창녀다>(2011)는 한 번 들으면 쉽사리 잊기 어렵다. 강렬한 정도가 아니라 어디서 제목을 말하기조차 조심스럽게 만든다. <아버지는 개다>(2010)는 또 어떤가? 누군가에게 별생각 없이 제목을 말했다가 오해를 살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이상우 감독의 전작들인 <엄마는 창녀다>와 <아버지는 개다>는 완성도를 논하기 이전에, 제목부터 논란을 부르기에 충분했던 영화였다.


제목부터 파문을 일으키던 이상우 감독이건만, 그의 신작 <바비>는 제목이 평범하다 못해 심심하다. 적어도 제목에선 어떠한 논란 요소도 찾을 수 없다. 도리어 <바비>에 주연 배우로 <여행자>, <아저씨>, <이웃사람>등에서 주목받은 김새론과 친동생 김아론이 나온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도 친자매로 나온다. 


<바비>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성공'이라는 신기루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포항은 평화로운 동네다. 사람들은 한가롭게 바닷가를 걷고 있으며,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장난을 치고 있다. 어떤 범죄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한가로움이 느껴진다.


평화로운 풍경의 이면에서 이상우 감독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망각을 포착한다. 조용한 일상에다 '불법 장기 매매를 위한 입양'이란 충격적인 사건을 집어넣음으로써 영화의 시간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시간으로 탈바꿈된다. 영화는 그 시간 속에서 슬픈 시절을 살아간 자들의 순응과 저항의 생활상을 관찰한다.


영화 속 순영(김새론 분)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다. 반면에 순영의 동생 순자(김아론 분)는 다르다. 완벽한 모습을 갖춘 '바비 인형'의 삶을 동경하는 순자는 가족보다 자신의 성공을 우선한다. 


순영의 모습이 우리가 간직하고 싶어하는 지난 시절의 즐거운 기억이라면, 순자의 모습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지난 시절의 슬픈 기억이다. 성공을 위해선 가족도 버리며, 미국을 약속의 땅이자 지상낙원으로 생각했던 순자에겐 강제되었던 성공의 열망이 담겨있다. 순자를 미국 가정에 팔아버리는 작은 아빠 망택(이천희 분)에게도 그런 열망은 나타난다. 무조건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순자와 망택. 이들에겐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삶에 대한 저항이 드러난다.


<바비>를 보고 현재에도 한국에서 이런 목적의 입양이 자행된다는 시각으로 영화를 해석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사이러스 노라스테 감독의 <더 스토닝>(2008)을 보고 집단의 침묵에 대해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인간 이하의 사람들이 사는 국가'라고 오독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분명히 <바비>도 '불법 장기 매매를 위한 입양'의 문제를 고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어둠의 아이들>(2008)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도리어 <바비>에서의 언급은 지금 '우리가 사는 여기'가 아닌, '지구촌 어딘가에'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바비>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것은 질곡의 역사를 살았던 인물들과 그들이 쫓았던 성공이란 이름의 신기루다. "아이 러브 아메리카"를 외치는 순자의 얼굴에는 배창호 감독의 걸작 <깊고 푸른 밤>(1984)의 백호빈(안성기 분)이 아른거린다. 미국 영주권을 받기 위해 "아이 러브 아메리카"를 외치던 백호빈과 입양을 가기 위해 "아이 러브 아메리카"를 외치는 순자는 같은 군상이다. 결국 <바비>가 보여준 것은 <깊고 푸른 밤>에서도 다루었던 그 시절의 맹목적인 성공 추구가 만들어낸 아픔과 눈물이다.


시대가 낳은 순자와 백호빈에 대해 연민을 느껴야 한다. 그러면서 성공을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았던, 심지어 장기 이식을 위한 불법 입양까지 자행했던 우리의 잘못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모든 모습은 우리가 잊거나 외면해서는 안 될 우리의 추악한 얼굴이자 더러운 역사다. 깨끗한 역사만이 기억되어야할 역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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