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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2008, 나홍진)_한국'형' 스릴러의 계보를 잇다

최신영화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6. 8.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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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의 신작 <거북이 달린다>의 개봉을 앞두고 이 영화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ㅎㅎ
2008. 1. 31.  by shinsee



'추격자'

감독 : 나홍진
주연 : 김윤석, 하정우, 서영희


보도방을 운영하는 전직 형사 ‘중호’, 최근 데리고 있던 여자들이 잇달아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고, 조금 전 나간 미진을 불러낸 손님의 전화 번호와 사라진 여자들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번호가 일치함을 알아낸다. 하지만 미진 마저도 연락이 두절되고…… 미진을 찾아 헤매던 중 우연히 ‘영민’과 마주친 중호, 옷에 묻은 피를 보고 영민이 바로 그놈인 것을 직감하고 추격 끝에 그를 붙잡는다.

실종된 여자들을 모두 죽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담담히 털어 놓는 영민에 의해 경찰서는 발칵 뒤집어 진다. 우왕좌왕하는 경찰들 앞에서 미진은 아직 살아 있을 거라며 태연하게 미소 짓는 영민. 그러나 영민을 잡아둘 수 있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공세우기에 혈안이 된 경찰은 미진의 생사보다는 증거를 찾기에만 급급해 하고, 미진이 살아 있다고 믿는 단 한 사람 중호는 미진을 찾아 나서는데……



비 오는 음침한 도시,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주택가 골목, 곳곳에 솟아있는 붉은 십자가.
이렇게 익숙한 풍경 속에서, 우리의 이웃에서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설정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섬뜩하다.
오랫동안 교회에 안 나오는 이웃의 안부가 궁금해도 그 집에 찾아가면 안 되고, 혼자 있는 것보단 낫겠지 싶어 이웃집 총각을 붙들어 곁에 두어도 안 된다.
심지어는 조카를 삼촌과 단 둘이 남겨 놓아도 안된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될 때
영화를 보고 난 후 공포감은 극대화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살인의 추억>과 비교 '당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연쇄살인범을 쫓는 우직한 남자와 여우같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의 대결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추격자>가 <살인의 추억>과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살인의 추억>은 관객 모두 범인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래서 영화 도중에 잡혀오는 용의자 모두 심판대에 올라 관객의 추리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송강호의 우둔한 두뇌플레이는 일순 우스우면서도
관객 입장에서도 그 이상의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범인을 찾지 못해 희생자가 늘어나느 데 대한 자책감을 나누어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추격자>의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다.
범인 '지영민'의 집이 어디인지 생존자가 어디에 어떤 상태로 갇혀 있는지,
범인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사람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뒤를 쫓는 '엄중호'를 응원하고 독려함과 동시에
게으르고 무능한 형사들의 행보에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추격자>가 <살인의 추억>과 비슷해 지지 않기 위해 선택한 최소한의 '차이'점이다.
미결사건을 영화화해 흥행에 크게 성공한 <살인의 추억>만이 가지고 있는 프리미엄마저 반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대신 <추격자>는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친절히 알려주고 '엄중호'의 명석함과 동물적인 수사감각에 기대는 것과 동시에
'엄중호'의 인간적인 면이 되살아나는 데에도 촛점을 맞춘다.
그리고 역시 모든 사건이 정해진 시간 (<추격자>의 경우 영장 미발부시 용의자를 12시간 안에 풀어주어야 한다) 안에 해결되어야 한다.
'12시간 안에 '지영민'이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는 것과 '위기에 처한 김미진'을 찾아야 한다'는 것.
우리는 그 과정에 기꺼이 동참하고 빠져든다.
그 과정은 현란하고 급박하고 속이 상하고 우울하다.

<살인의 추억>을 한국'형' 스릴러의 전형적 기준으로 삼는다면
<추격자>는 <세븐데이즈>보다 한국'형' 스릴러의 묘미를 더 한껏 살려내는 장기를 발휘한다.
여기서 한국'형'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한국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종의 고질적 관습들의 묘사다.
무능한 공권력, 직감보다 서류가 중요한 공무원 사회, 가오 상하는 걸 최대의 수치로 여기는 고위급 관료들, 나태하고 안일한 경찰, 적으로 간주되는 언론, 우기고 윽박지르는 사람이 이기는 장면 등등..
영화에 비치는 그런 한국만의 찌질한 모습들은 희한하게도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일종의 안도감과 소속감을 전달해 준다.
그리고 그러한 에피소드는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주인공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데에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주인공 '엄중호'는 한국사회에서 패배한 찌질한 영웅이 사회의 협조를 받지 못하고 자기 방식대로 사건을 해결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은 정말이지 눈물겹다.
그리고 그의 땀 만큼이나 짜고 진득하다.


하정우의 연기와 캐릭터가 궁금했지만 그의 얼굴은 시종일관 상처투성이인데다가 모자를 자주 써서
싸이코 범인 특유의 미친 눈빛연기를 보여주기에는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그에 비해 김윤석은 잦은 클로즈업과 역동적인 카메라 샷을 통해 미세한 표정변화, 활동적인 액션 등이 제대로 살아났다.
(카메라가 김윤석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그 분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연기력 top 4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자격이 있는 배우임을 증명했다.
(연기력 top 4 : 설경구, 최민식, 송강호, 김윤석)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약간의 사투리가 섞인 그의 억양이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에 너무 많이 겹쳐 보였다는 점이다.
그의 무지막지한 언행 캐릭터는 송강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봤을 때 오히려 또박또박 표준어를 구사했으면 캐릭터가 잘 안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이유는 뭐랄까, 한국 영화에서 순도 100% 엘리트나 로맨틱 코미디의 남녀주인공이 아니고서는 사투리 좀 써 줘야 대사빨이 사는 것과 같은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이 형성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 로맨스 영화 주인공들 중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사투리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윤수(강동원)인데
그나마 신분(?)이 사형수여서 정상적인 사회적 위치의 인물이 아니었다.)

<추격자>는 <살인의 추억>과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으되 시작과 끝이 다른 영화다.
(이 영화가 유영철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 졌다고 하지만 <살인의 추억> 속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비중과 의미와는 분명 다른 위치에 있다.)
설사 '아류'라 하더라도 분명 가치는 있다.
그리고 그 가치는 장편상업영화로 첫 데뷔를 한 나홍진 감독의 다음 작품으로 더욱 명확해 질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오랫동안 남는 '우울한' 잔상을 결국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땐 '그 영화 재미있더라'라고 표현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본 후 합정으로 달려가 모임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약속 장소가 영화 속에 줄기차게 등장하는 장소, 망원동 근처라는 생각에
그냥 일정을 포기하고 말았다.
무언가 음산하고 섬뜩한 기운이 그 동네를 감싸고 있을 것만 같더란 것이다.
영화를 본 후 누군가 '그 동네(망원동) 땅값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를 했는데
정말 그 정도 된다면 영화는 이미 왕대박을 터뜨린 후겠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영화 진짜 대박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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