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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나비처럼 (2009, 김용균)_손발을 펼 수 없는 멜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0. 26.

불꽃처럼 나비처럼 (2009, 김용균)_손발을 펼 수 없는 멜로

 

불꽃처럼 나비처럼 - 6점
김용균

 조선왕조 마지막 멜로 (불꽃처럼 나비처럼) |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사랑이 시작된다!

 세상에 존재를 알리지 않은 채 자객으로 살아가던 ‘무명’은 어느 날,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피비린내에 찌든 자신과 너무나 다른 여인, ‘자영’을 만나게 된 것. 하지만 그녀는 곧 왕후가 될 몸으로, 며칠 후 ‘고종’과 ‘자영’의 혼례가 치러진다. ‘무명’은 왕이 아닌 하늘 아래 누구도 그녀를 가질 수 없다면, ‘자영’을 죽음까지 지켜주겠다고 다짐하고, 입궁 시험에 통과해 그녀의 호위무사가 되어 주변을 맴돈다.

 한편, 차가운 궁궐 생활과 시아버지와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하루도 안심할 수 없는 나날들을 보내던 ‘자영’은 ‘무명’의 칼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외압과 그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한 ‘자영’의 외교가 충돌하면서 그녀를 향한 ‘무명’의 사랑 또한 광풍의 역사 속으로 휩쓸리게 되는데…


명성황후는 이미 너무나 유명한 역사 속 인물임과 동시에 이제는 그녀에 관한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대중화된 콘텐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미연과 문근영, 조수미, 최명길, 강수연 등을 중심으로 가히 명성황후 신드롬이라 일컬을 만 했던 현상이 지나간 뒤 꽤 긴 시간이 지난 뒤 또 한 명의 명성황후가 영화에 등장했다. 영화 속에서 기품을 뽐내는 수애의 자태는 역시 왕후의 그것을 표현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깊어 보이는 눈빛, 경박하지 않은 몸짓과 위엄있는 목소리는 수애가 지금까지의 명성황후들 중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배우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비주얼과 이미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약간 의문이 들기도...;; (그녀는 극의 초반 가끔 대본 리딩을 선보인다)





역시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조승우가 될 듯 하다.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분방한, 그러면서도 야성미 넘치는 검객의 이미지, 게다가 자기 여자에겐 따뜻한 면모까지 두루 갖춘 매력적인 캐릭터를 소화하기에 조승우만큼 적역인 배우가 또 있을까. 똑같이 손발이 오글거리는 대사를 쳐내면서도 수애와는 또다른 담백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진정한 능력자. 뭇 여성들은 이 영화를 보고 '조승우를 위한 영화'라고 탄복해 마지 않았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명성황후' 아니 '민자영'이다. 명성황후로서가 아니라 '민자영'이라는 한 여성으로서 가슴 속에 숨겼던 세상을 향한 두려움, 표현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감정들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다. 명성황후가 초콜릿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고 서양식 드레스를 입어보는 모험을 하고 대사의 부인들을 상대로 하는 외교를 시도한다면 민자영은 자신의 가마 밖에서 나란히 걸으며 자신의 이름을 속삭여 주거나 자객으로부터의 탈출을 도와주는 든든한 존재인 '무명'을 남모래 사모한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그녀가 국모라는 지위와 여성으로서의 행복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이 열강 외세 속에서 떠밀려 다니는 대한제국의 운명과도 겹쳐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역시 이 엄청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하나의 멜로 드라마로 포장하기에 우리는, 아니 제작진과 관객은 모두 엄청난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듯 하다.

그저 만화나 무협지에 등장하는 검객 '무명'이 궁 안에 들이닥친 일본 군대에 맞서 일당백으로 싸우면서 우리를 내버려 두라는 절규를 내지를 때 그 '우리'는 민자영과 무명 뿐 아니라 대한제국의 왕과 신하들, 국민들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었는데 그 장면이 어색한 이유는 그가 지고지순한 멜로남에서 갑작스레 애국청년으로 둔갑하는 장면이 설득력을 충분히 얻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로지 민자영 한 여자만을 위해 몸을 던져 싸우던 그가 일본 군대 앞에서 굳이 '백성'을 운운하는 일장연설을 늘어놓아야 했던 이유는 명성황후를 한낱 멜로 영화의 주인공으로 치부하는 것을 불편해 했기 때문이리라.
우리에게 있어 명성황후는 대의명분을 위해 용감하게 죽어갔던 여성으로 기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구성지고 드라마틱한 일생을 살았던 명성황후가 한 여인으로서 어떠한 감수성과 내면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조명하기 위해 그녀를 목숨처럼 지켰던 무사의 캐릭터를 창조해 낸 원작자와 감독의 협공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영화는 순박한 멜로와 장중한 역사의 비극성을 오가며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CG를 덧입혀 화려한 영상을 보여주기에 이 영화는 무엇보다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역시 현대 영화가 구사하는 멜로적 코드를 사용하여 실존 인물의 운명적 사랑을 역사적 맥락 안에 녹여낸 결과는 그다지 매끄럽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삽입되었을 '무명'과 대원군의 무사 '뇌전' 간의 과장된 결투 씬은 과도한 CG와 무리한 설정 때문에 영화 속 현실과 괴리되고 만다. 또한 몇몇 결투씬은 어디선가 보았던 듯한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작은 나룻배 위, 빙판을 가르며 벌어지는 두 무사의 결투는 비장하고 화려하다는 측면에서 장이모우의 <영웅>에 나오는 '수상전'을 방불케도 하지만 사실 영화의 내용과는 별 상관없이 쌩뚱맞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또 건청궁 앞에서 일본 군대와 홀로 맞서 싸우는 무명의 모습도 역시 장이모우의 <황후화>에서 아버지의 군사들과 맞서 홀로 싸우는 원걸 왕자의 모습과 겹쳐지는 등 그다지 창의적인 비주얼은 아닌 듯.




하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상업영화로서 지녀야 할 요건들을 고루 갖추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배우들의 연기나 의상 및 세트, 로케이션 모든 부분이 시각적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역사 속 인물에 감정을 대입해 볼 기회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의의이리라.



* 단, 분명히 아름답고 절절한 사랑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장면에서 손발이 자꾸 붙어버리는 건 어쩔 수 없더라. 내가 시니컬해진 건가, 아니면 영화의 화법이 정말 오글거려서인가. 판단하기 힘들다;; 내가 나쁘고 메마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아 ㅡ.ㅡ;;


같이 봅시다!
쌍화점
감독 유하 (2008 / 한국)
출연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심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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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사랑은 이러했으리라. 이러지 말란 법이 없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2009/01/07 - [신씨의 culture 리뷰/영화/다큐멘터리] - [영화] 쌍화점 (2008, 유하)_배우가 살린 영화

한반도
감독 강우석 (2006 / 한국)
출연 차인표, 조재현, 안성기, 문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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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에 주먹 불끈 쥐게 되는 '을미사변'을 목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