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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영화리뷰

나인 (2009, 롭 마샬)_화려함, 덧없지만 거부할 수 없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6.

희대의 카사노바이자, 천재 영화 감독인 ‘귀도’는 자신의 아홉 번째 작품을 준비하던 중 머리를 식히기 위해 홀로 휴양 스파를 찾는다. 한숨 돌리며 작품을 구상하려 했지만, 아름다운 여배우 ‘클라우디아’와 유일한 안식처인 아내 ‘루이사’, 그리고 치명적인 매력의 요염한 정부 ‘칼라’를 비롯한 일곱 여인들의 아찔한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녀들로부터 점점 작품에 대한 특별한 영감을 얻게 되고, ‘귀도’는 창작의 욕구가 되살아 나기 시작하는데… 과연 귀도는 세기 최고의 작품을 성공해 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단 한 명의 여인은 누가 될 것인가?


뮤지컬은 무대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영화를 통해 보는 것도 못지않게 짜릿하다. 그리고 롭 마샬 감독의 전작 <시카고>를 재밌게 봤기 때문에, 또한 마리온 꼬띨라르, 페넬로페 크루즈 등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배우들이 등장한다는 점 등등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꼽아보자니 은근히 많다. 뮤지컬 무대와 현실을 자유롭게 오가는 동안, 대사와 노래가 자연스럽게 섞이는 동안 환상과 현실을 동시에 오가며 살아가야만 하는 영화감독 주인공 '귀도'(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먼저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 어머니에 대한 향수, 동네의 창녀에 대한 기억 등이다. 호기심 많고 자신을 억압하는 기제들로부터 자유로워 지고 싶었던 소년이었던 그는 중년의 나이를 맞았지만 여전히 아이 그대로의 감성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귀도의 솔로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몸집만 자란 아이들, 특히 영화나 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노래처럼 들리기도. 그게 남자의 정석은 아니지만 일부는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하지만 이 몸집 큰 아이들이 어른 노릇을 하고 싶어하는 분야는 따로 있으니 그를 둘러싼 수많은 여인들과의 만남을 만끽하는 것. 예술가의 영혼을 추종하는 여인의 무리들이 그의 주변에도 들끓었으니 그의 정숙한 부인 루이자(마리온 꼬띨라르), 섹시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그의 정부(페넬로페 크루즈), 과거의 여인이자 대배우(니콜 키드먼), 그에게 새롭게 관심을 보이는 금발의 여기자(케이트 허드슨) 등이다. 그녀들의 독무대 역시 각 캐릭터에 어울리는 연출로 각기 에너지를 뿜어낸다. '섹시'를 온몸에 뒤집어 쓴 듯한 페넬로페 크루즈의 무대는 '치명적인 매력의 정부' 역할에 그녀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가장 활기찬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보그 기자로 나온 케이트 허드슨의 무대. 쿨하고 자신만만한 커리어 우먼의 유혹, 그리고 그러한 특성을 런어웨이 스타일의 무대로 꾸며 끊임없는 플래시 세례와 함께 연출한 시퀀스는 가슴 속이 뻥 뚫릴 만큼 후련하다.

온몸이 '관능'을 말하는 듯한 페넬로페 크루즈.




여기에 귀도의 어린 시절의 한 기억을 형성하고 있는 동네 창녀 퍼기의 무대까지 합치면 과연 이 영화는 제대로 만들어진 뮤지컬 한 편을 보는 것과 같은 역동성과 흥분을 고스란히 전달해 준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감정선을 유지하는 것. 그 역할은 영화감독을 남편으로 둔 아내 루이자(마리온 꼬띨라르)의 몫이다. 모두가 동경하는 영화감독이자, 한때 자신에게는 뜨거웠던 남편이지만 영화와 현실 그 어느 곳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겉도는 남편 때문에 고뇌하는 여인의 모습은 마리온 꼬띨라르의 천진한 듯 하면서도 검은 눈동자로 잘 표현된다. 하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 덕분에 화려한 삶 이면에 가려진 현실 안에서의 영화 감독의 삶 마저 드라마틱해 보이도록 만든다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 그 외 니콜 키드먼의 캐릭터는 그녀의 이름 값을 하기에 다소 부족해 보이기도.


눈과 귀가 화려한 뮤지컬의 옷을 입고 한 중년 남성의 자아와 사랑을 찾아가는 성장 드라마의 결합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결말로 이어진다. 결국 진실한 사랑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내려주는 멜로영화로서의 측면보다는 주인공 귀도를 통해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의 이면을 들여다 보는 것, 그리고 각 여배우들의엄청난 끼를 목도하고 무대별로 점수를 매겨보는 등의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측면의 의미가 더 큰 영화. 물론 영화감독이 예술가이자 창작자로서 고뇌를 겪는 것이 여인들로부터 비롯되고 또 여인들에 의해 해결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판타지가 성적인 분위기에만 흥청거리는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그게 어쩌면 가장 실제와 가까운 그들의 내면인지도 모르는 거다. 너무 안일한 해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화 <나인>은 한 직업인의 애환을 샅샅이 파고들어 울림을 주는 인물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그야말로 '뮤비컬'의 특장점을 최대한 살린 작품이다. 게다가 엄청난 여배우들이 쏟아져 나와 섹시 경쟁을 펼치는;; 그리고 그 안에 음악과 리듬, 조명이 있는.

이 영화 리뷰를 쓰면서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을 언급하지 못한다는 건(영화를 못봐서;;) 애석하지만 어쨌든 두 영화의 지향점은 엄연히 다를 터. 화려한 뮤지컬을 이렇게 영화로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엄청난 배우들의 호연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롭 마샬, 개인적으로는 너무 고맙다. 일전에 공연했던 황정민 주연의 뮤지컬 <나인>을 놓친 것이 새삼 안타까워진다는. 



사족을 덧붙이자면, '난 영화감독(같은 사람)이 싫어요'라고 말은 하면서도 주인공 귀도에게 끊임없이 빠져드는 여인들의 마음 만큼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는 것. ㅡ.ㅡ;; 직업이 문제가 아니라 역시 결국은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영화감독은 사생활이 아닌 그의 작품과 세계관으로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아.. 여배우들이 없는 영화계란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전 봤던 한국영화 '여배우들'의 포스를 능가하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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