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한 영화 <마녀의 관>
<마녀의 관>은 한 가지 조건이 깔리는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해 얼마만큼의 사전 지식을 알고 보느냐란 조건.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가 하면, <마녀의 관>이 러시아의 작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의 소설 <비이>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수 많은 작품들이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로 만드는데 이 영화의 무엇이 특이해서 그런가라는 생각이 드는 분이 계실 것이다.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마녀의 관>이 특이한 점은 <비이>를 3가지의 형태 재해석해서 만들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자를 세 가지 영상으로 변형하여 만들어낸 작품 <마녀의 관>. 감독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독후감에서 출발한 듯한 흥미로운 접근이었다.
원작소설을 3개의 형태로 변형
<마녀의 관>의 스토리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비이>라는 소설의 내용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한다. 소설 <비이>를 정리해서 옮겨본다면 한 명의 신학생이 마녀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한 신학생이 우연히 머물게 된 노파의 집, 그 집의 노파는 마녀였고 신학생은 그녀를 때려죽인다. 그 후 마을의 영주는 죽은 자신의 딸을 위해 신학생에게 기도를 부탁하게 되는데, 기도를 하러 간 신학생은 죽은 영주의 딸이 자신이 죽인 마녀임을 알게 된다. 신학생은 3일 동안 밤마다 예배당에서 기도를 하며 마녀와 싸우게 된다는 내용이다.
<마녀의 관>은 3개의 챕터로 구성이 되었는데, 이 형태는 소설 <비이>를 3개의 형태로 재해석하여 변형해 낸 모습이다. 제 1막 <이상한 여자>는 <비이>를 영화로 만들려는 영화감독이 주연 여배우를 보며 느끼는 불안감과 호기심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제 2막 <마녀의 관>은 <비이>의 내용 중 예배당의 장면을 마치 연극무대의 실황을 보는 듯 만들어낸 작품이다. 제 3막 <커튼 콜>은 <비이>를 인형극으로 만드는 한 극단에 들어간 시각장애인 뮤지션이 겪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때로는 긴밀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이어진 에피소드들
이렇듯 <마녀의 관>의 3개의 챕터는 <비이>를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낸 모습들이다. 하나는 영화라는 형태로, 다른 하나는 연극이라는 형태로, 또 다른 하나는 음악을 동반한 인형극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하나의 이야기를 부분부분으로 쪼개어 영상으로 만들어냈고 각각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구성을 했다. 3개의 이야기로 연결된 <마녀의 관>은 어떻게 보면 긴밀하게, 어떻게 보면 느슨하게 이어진 에피소드들이다.
제 1막 <이상한 여자>는 감독 자신이 느끼는 강렬한 불안감과 호기심이 관객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영화 초반의 분위기를 조성해낸다. 그리고 마치 소설 <비이>로 빨려 들어가듯 관객을 이끈다. 그리고 관객을 제 2막 <마녀의 관>으로 불러 예배당에서 벌어지는 신학생과 마녀의 싸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예배당의 공간은 현대 어디쯤으로 이동해서 아직도 이어질지 모르는, 아니면 새로운 싸움 또는 화해라고 해석이 가능한 제 3막 <커튼 콜>로 마무리를 한다. 물론 각각의 이야기들을 연결시켜 해석해낼 수도 있지만 그냥 원작소설의 마녀를 다양한 형태로 변형해 냈다고 보는 것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정답이 있는 영화는 아닐 테니.
공포의 본질에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마녀라는 대상을 통해 공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공포의 본질은 무엇인가? " 그리고 공포가 주는 두려움과 그에 동반한 호기심을 다룬다. 두려워하지 않으면 인간은 죽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때로는 보고 싶은 욕망이 죽음의 두려움을 초월하게 된다. 마녀인지 미녀인지, 사람인지 귀신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은 현실과 꿈의 경계선을 걷고, 자신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내가 죽인 여자는 마녀가 맞는 것인가, 내가 두려워하는 존재 비이는 내 상상에서 나온 괴물인 것인가?
높은 실험성과 낮은 대중성
영화, 연극, 음악 등 문화의 다양한 표현법에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접목한 영화 <마녀의 관>. 글이 영상으로, 연극으로, 음악으로 변형되어 재가공,재탄생 하는 일련의 과정은 상당히 흥미로운 접근이자 시도였다. 거기에 더해진 영화 특유의 독특한 미학 또한 흥미요소였다.
그러나 영화는 높은 실험성을 가졌을지언정 재미는 없다. 대중을 위한 친절한 배려는 보이질 않는다. 원작소설을 접하지 않고 영화를 보는 사람이 흥미를 느낄 요소는 너무나 적으며 그에 대한 배려도 없다. 감독이 원작소설을 보고 느꼈던 독후감의 영상화는 소수의 관객만이 즐길만한 놀이거리다. 이해하기도 힘들고, 접근하기도 힘든 구성이며,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일방적으로 관객에게 강요를 하는 듯한 모습이기도 하다. 내가 느낀 점이 이건데 어때 라고 하듯.
훗날 이 영화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그러나 현재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 작품은 난해하며 어렵기만 하다. 그리고 불친절하다. 하나의 텍스트를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한 실험정신은 높이 사주고 싶지만, 그러기엔 지루함이 너무나 크다. 그래서 난 선뜻 다른 사람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기 망설여진다. 왜냐고? 나도 지루했으니까.
*<마녀의 관>을 보러 가겠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라면 원작소설 <비이>나 1967년에 만들어진 영화 <마녀전설>이라도 본 후에 영화를 보러 가라고 말하고 싶다. 원작소설 <비이>는 현재 출판사 생각의 나무에서 발행한 <오월의 밤>에 에피소드로 수록되어 출판되었다. 그리고 <마녀전설>은 비디오로 출시되었고, 어둠의 루트를 잘 뒤져보시면 찾아 볼 수 있다. 적어도 한 개는 접하고 보러 가야지 보는 눈이 달라질 거라 생각한다. 나처럼 영화 보고 원작소설과 <마녀전설>을 구해서 보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참고로 <마녀전설>의 마녀는 상당히 예쁘다.
*<마녀의 관>의 제 2막은 3D입체영화로 촬영이 되었다고 한다. 상당히 좋은 시도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걸 제대로 구현해줄 극장에서 <마녀의 관>이 상영될지 의문이다. 언론/배급시사회에서도 입체가 아닌 일반판으로 상영이 되었는데 향후 입체버전이 정상적으로 상영이 될 지 궁금하다. 게다가 현재 부분입체영화의 경우, 아이맥스DMR3D로 상영이 되었던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나 <슈퍼맨 리턴즈>등은 풀버전 가격을 받았다고 아는데, 일반3D입체영화를 부분적으로 입체로 상영할 경우 어느 정도의 가격이 책정이 될지도 궁금하다. 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시장에서 풀3D보다는 부분3D를 조금씩 시도하는 걸 찬성하는 사람으로, 이번 <마녀의 관>의 시도가 신선한 발상이라 마음에 든다. 향후 어떤 진행과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2010년3월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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