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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9 (2009) - SF의 확대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

최신영화리뷰

by 사과랑 2009. 10. 22.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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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9 (2009) - SF의 확대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



감독: 닐 브롬캠프

주연: 샬토 코플리(비커스)

 

 어릴 적, 미국 상공에 엄청나게 큰 원형의 비행선이 나타났었다. 물론 미국이 주요 배경이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나타났던 이 비행체에서 쥐를 산 체로 잡아 먹는 외계인이 지구를 점령하여 인간들은 레지스탕스가 되어 싸웠다.


 그리고 수 년이 흐른 후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한 번 더 나타났던 외계인들을 아주 간단하게 지구의 컴퓨터 바이러스를 주입시켜 소탕시켰다. 애시당초 외계인은 지구를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침략을 시도했다. 물론 그러다가 지구의 자연체 바이러스에 다시 도망가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이클 잭슨'과 '마이클 조던'과 같은 유명인들이 알고보니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곳곳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병구'라는 친구는 지구인 속에 숨어있는 외계인을 찾기위해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외계인이라는 존재는 이미 우리의 삶의 깊게 파고든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외계인이 나타났다. 이번엔 그 흔하고 넓고 다양한 인종들이 많으면서 스펙터클해질 수 있는 미국이 아니라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나타났다. 물론 그들은 원해서 지구에 온 것은 아니다. 재수없게 지구의, 그것도 미국도 아닌 남아공에 불시착했던 것이다.

이들은 지구인들에 의해 바로 외계인 수용구역인 디스트릭트 9으로 집단 수용된다. 하지만 이곳의 범죄가 급증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MNU라는 외계인 관리업체는 신속하게 디스트릭트 10으로 이주시킬 계획을 세운다. 이러한 계획의 선봉장으로 '비커스'가 급파되지만, 이 친구는 외계인의 이상물질에 노출되어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빠져버리게 된다.



 X360의 유명한 게임인 <헤일로>의 메가폰을 잡는다는 '피터 잭슨'의 이야기를 듣고 내심 기대했는데, 기대한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디스트릭트 9>이라는 <헤일로>보다 2글자 더 많고, 숫자까지 붙은 이상한 출처를 알 수 없는 영화를 가지고 돌아왔다. 먼저 개봉한 북미쪽에서는 비평가들이 최고라는 찬사를 날리자, 국내에서도 다소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뚜껑이 열리자.

 
역시~ '피터 잭슨'~이라는 감탄사가 연발이다.

 

 사전 정보없이 보게 된 나도 완전 감탄했으니 말이다.

 

 '닐 브롬캠프'라는 감독은 'Alive in Joburg'라는 단편으로 이 영화의 제작자인 '피터 잭슨'의 눈에 띄어 장편 영화화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 둘의 궁합은 적절하다고 본다. 여기에 '피터 잭슨'은 저예산으로 화려한 고어씬을 연출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오래 전 <고무인간의 최후>와 <데드 얼라이브>로 갈고 닦은 실력이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는데, 3천만불이라는 액수로 화려한 고어씬과 SF메카닉씬을 연출 할 수 있었던 것은 '닐'감독의 능력도 있겠지만 '피터 잭슨'의 능력이 더 대단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미국 상공이 아니라 남아공 상공에 비행선이 불시착한다. 게다가 이 비행선에 탑승했던 외계인들은 질병 등으로 이미 초토화된 상태로 지구에 도착했다. 결국은 이들은 간단하게 낙오자, 혹은 루저~라는 속된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딱 이들이 그런 상황의 존재들인 것이다.


 어마어마한 무기로 지구정복이 아닌 하루 하루 고양이 밥으로 끼니를 떼우며, 고향으로 돌아갈 나날들을 생각하는 이 무리들에게 지구인들에게 있어서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 일 것이다. 그들이 아무런 짓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뭔가 더러워보이고 깔끔해보이지 않는 인상에 혐오감을 주는 페이스는 쳐다도 보기 싫었을 것이고, 상종도 하기 싫었을 것이다.


 어쩌면 남아공의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있어서는 외계인과 똑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결국 오래전의 흑인이나 지금의 외계인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인거다. 그리고 그 역사적 자리가 바로 남아공이며, 그 유명한 아파르트헤이트 지역이다.

 

 남아공 출신의 '닐'감독은 가감법 없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단지 그것을 SF라는 장르에 빗대어 말하고 있는데, 영화를 보면 SF의 포장을 뒤집어 쓰고 직설화법으로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한다. 군수업체의 포악함과 소위 지구인들이 구분하는 이분법적 세상을 직접적으로 그려낸다.


지구인들이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될 때.

여타의 영화에서 나온 외계인들과 별반 다를게 없다.

결국 이들 눈에도 우린 외계인일 뿐이기 때문이다.



 
타자가 위협적으로 느끼는 이유는 바로 타인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나라는 존재를 공격할 수 있고, 나와는 다르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현재의 안정을 누리고 있는 나라는 존재에게 심각한 골치덩어리가 되는 존재다. 타인이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이다. '나'라는 범주 안에 속해 있지 않고, '남'이라는 범주에 속하며,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선을 그어버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이는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할 줄 모르는데서 오는 것이요, 소수라는 존재에 대한 불확실한 불안감 때문이다.


 성적 소수자나 장애인들, 혹은 흑인들은 구분되어 지고 일방적인 폭력으로 무릎 꿇게 만든다. MNU는 군수업체이다. 그들이 외계인 관리를 맡음으로서 표면적으로는 질서를 내부적으로 폭력을 일삼는다. 이런 보이지 않는, 일방적인 폭력은 영화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도 진행되어 왔었고, 진행되어 가고 있다.


 

 앞에서는 질서를, 뒤에서는 강제 이주와 폭력의 역사를 쓰는 우리에게 MNU나 우리나 별반 차이가 없다.



 이 영화는 단지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사성을 지니면서 색다른 느낌을 부여해준다. 새롭게 창출된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사회고발을 다큐에서만이 아닌 SF영화에서도 이렇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밝혀주고 있는 셈이다.

 

 '비커스'가 찌질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본 모습일 지도 모른다. '비커스'는 영웅이 아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에겐 동경심을 가지지만 같은 존재나 하위 존재에 있어서는 거부감과 동정심 두 가지를 느끼게된다. 우리도 나약한 인간이며, '비커스'도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그가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였기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달린 것일 뿐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단 한가지는 생각해야 할 것이다. '비커스'가 초반부에서 했던 행동과 후반부에서 했던 행동은 확연히 틀리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언제든 다른 이들에게서 타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완벽한 타인도 없고 나도 없다.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쿠버스'군인 밖에 되지 못한다.

 

 간만에 신선하고 생기 넘치는 영화를 본 것 같다. 참고로 이 영화를 오직 영화 평점만 믿고 연인과 함께 볼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란다. 커플용 영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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