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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경계선의 영역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도발적 접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2. 16.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를 영화 내용을 떠나 제목으로 한 가지 상상을 해본다.제목이 왠지 영화 팬들에게 던지는 도발적 메시지 같다는 상상.헐리우드 블록버스터나 메이저 영화들을 보는 행위를 육식이라고 본다면 이런 류의 영화들은 채식이라는 발상을 해보았다.물론 <채식주의자>는 영화장르의 독립선언을 외친 영화는 아니다.그냥 나 혼자 가볍게 장난을 쳐본 것이다.다소 어려운 영화의 리뷰를 시작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해본 장난이고,이 장난은 영화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지만 왠지 적어보고 싶었다.


쉽지 않은 코드의 영화다

<채식주의자>는 결코 간단하지도,쉽지도 않은 소재에 접근한 영화다.소재 보다 우선적으로 언론 등에 화제성을 모은 것은 여배우 채민서의 8kg의 체중감량.체중을 줄인 여배우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작년 <내 사랑 내 곁에>의 김명민이 화제를 모은 것의 연장선 상에 있을 것이다.그리고 이것은 연기를 위해 신체를 극한의 고통까지 몰고 가는 행위가 영화를 위해 적절했느냐,아니면 의미 없는 소모적 행위였는가로 이어진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는 보던 중,그리고 보고 나서 먼저 든 생각은 다른 관점의 생각이었다.체중을 줄였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더욱 눈길을 끈 점은 금단적인 불륜코드인 형부와 처제와의 관계였다.물론 단순한 에로적 면을 자극하는 그런 코드는 아니며,충분한 상황적 묘사와 전개가 따른 코드였다.그리고 이 코드는 접근방법을 떠나 언론에서 시사회 후 바로 영화의 화제성으로 다루어졌다.


서로 간 욕망의 발현,그리고 충돌

<채식주의자>는 스토리를 액면 그대로 적는다면 간단한 스토리다.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영혜(채민서)가 어느 날 돌연 채식주의자가 되면서 이야기는 출발한다.그리고 영혜를 둘러 싼 두 인물인 언니 지혜(김여진),그리고 형부 민호(김현성)가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파국의 이야기.

영화는 리뷰 제목 처럼 경계선의 영역을 집중적으로 다룬다.그 경계선들은 욕망의 경계선이다.영혜는 의식의 현실과 비현실의 영역을 넘나드는 환상의 욕망을 가진 여자이다.그녀는 어느 날 꾼 꿈에서부터 의식의 모호함을 경험하면서 채식주의자가 된다.그러나 그녀의 채식주의는 단순히 고기를 안 먹는 행위가 아니다.그것은 어릴 적 경험한 폭력의 경험에서부터 온 것이다.육식동물의 폭력성과 사육성에 대한 거부가 발현이 된 것이다.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 한다.단지 고기를 안 먹는다는 점에만 신경을 쓸 뿐,내면의 잠재된 폭력성의 상징인 육식 거부는 알지 못한다.

그런 영혜를 간호하는 언니 지혜는 일상의 안정과 불안정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사람이다.그녀는 너무나 위태로운 자신의 일상을 평범한 모습으로 지키고자 노력한다.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무위도식하는 남편을 그저 지켜볼 뿐이고,채식주의자가 되어 병들어 가는 동생을 어떻게든 정상적 생활로 붙잡으려 노력한다.그러나 상황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그녀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 앞에 놓이게 된다.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와 그녀를 정상으로 돌려보고자 노력하는 지혜를 그저 지켜보던 민호.그가 이들에게 개입하게 된 계기는 몽고반점 때문이다.영혜의 몸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민호는 알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영혜를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예술적인 영감을 찾고자 한다.하지만 예술적 영감을 찾고자 하는 행위는 예술이란 이름 아래 점점 빗나간 동물적이고 육식적인 성적 일탈로 변하게 되며,영혜의 식물성과 민호의 동물성은 극한의 파국을 만들고 만다.


과잉으로 흐를 영화를 잘 잡아준 김여진

<채식주의자>는 이렇듯 지극히 불편한 코드를 담은 영화다.본능적이며 일탈적인 전개를 보는 행위는 유쾌함보다는 씁쓸함이 드는 게 사실이다.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영화들이 말랑말랑하며 달콤한 관계들을 다룬다면,<채식주의자>는 차갑고 어두운 현실적 욕망 속에 환타지적인 영화의 상상력을 집어 넣어 관객을 불편한 세계로 안내한다.애초부터 배려는 없다.이 세계 자체가 관객의 감상 경계 영역을 넘나드는 접근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는 결코 쉽지도 않고,다루기도 어려울 텐데,싸구려 에로 영화가 아닌 격을 갖춘 영화로 나온 것은 배우와 감독이 위태로운 줄타기를 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영화 속 형부와 처제의 관계를 받아들이기 편하다는 의미가 아니다.싸구려도 아니고,심오하지도 않은 적절한 영역 내에 이야기를 붙잡았다는 말이다.그리고 이것은 채민서와 김현성,그리고 임우성 감독의 넘칠지 모르는 과도한 연기와 연출을 적절히 잡아 당겨 다시 영역 안에 놓게 한 김여진의 공이 아닌가도 싶다.나로써는 김여진이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면서도 가장 혼란스러웠던 캐릭터 였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차 한잔을 나누며 이야기 할 만한 영화로는 부족함이 없다

소설가 한강의 연작소설을 원작으로 한 <채식주의자>는 소설에서 상상력으로 보여지거나 독자에게 여백으로 남을 요소들을 비교적 잘 채운 영화라고 생각한다.내가 원작소설을 보질 않아서 비교 평가는 힘들지만,극장에서 만난 <채식주의자>는 영화 자체로도 충분한 존재 가치를 가진 작품이라 생각한다.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가져야 할 미덕이라 생각하는 독창적,도발적,실험적 요소들이 두루 보이는 영화 <채식주의자>.거기에 일반적인 의미의 대중성이 아닌 다른 의미의 대중성도 가진 작품이라 생각한다.바로 일방적인 주입이 아닌 담론의 여지를 가지는 대중성이다.이 영화는 분명 메이저 작품도 아니고 일반적 사랑을 다루는 영화도 아니다.차갑고 냉정하며 실험적인 이야기며 욕망에 대한 본질적 탐구를 한다.이 욕망의 이야기를 대형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어떻게 다룰지는 모르겠다.하지만 영화 팬들이라면 이 영화를 한 번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보고 나서 커피 한 잔의 담소로 영화 내용을 복기하며 서로 이야기 해보는 소재로는 더없이 좋은 영화다.물론 코드 자체에 거부감이 든다면 절대 추천하고 싶지 않다.보면서 욕지거리가 나올 지도 모를 테니.

맨 처음 내가 장난 삼아 언급한 영화의 육식주의자로 남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단지 가끔은 채식을 하자고 권할 뿐이다.

*2010년2월1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