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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영화리뷰

리틀 애쉬: 달리가 사랑한 그림 (2008, 폴 모리슨)_비주얼로 담은 광기와 사랑, 예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31.
<리틀 애쉬: 달리가 사랑한 그림>
감독 : 폴 모리슨


스페인 마드리드의 대학에 진학한 18살의 살바도르 달리는 후일 각각 스페인의 거장 시인과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남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루이스 부뉘엘을 만나게 된다. 달리의 천재성과 독특함은 두 사람의 시선을 끌게 되고 그들은 함께 우정을 나눈다.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시대 속에서 그들은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이루기 위해 힘쓰고, 특히 달리와 로르카는 서로의 작품에 영감을 주며 더욱더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달빛이 빛나는 호수에서 두 사람의 우정은 조금 다른 의미로 변하게 되는데……

예술가들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를 사랑하기 마련이다. 그들이 동성일지라도 말이다. 일반과 비정상,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험심을 갖지 못한 자는 예술을 할 자격이 없으리라는 말은 비슷하게 영화 속에서도 등장한다. 젊은 살바도르 달리가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로르카에게 '한계는 없어(No Limit)'라고 했던 말도 로르카의 상상력과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말임과 동시에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사랑에 빠진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말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당시 스페인의 혼란스러웠던 시대상황과 함께 그 안에서 예술적 감성과 도덕적 잣대 사이에서 방황하는 예술가 들의 젊은 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 뿐 아니라 초현실주의 영화의 대표감독인 루이스 브뉘엘의 <안달루시아의 개>가 등장하고 실제 영화 속 장면이나 다큐멘터리 필름들도 삽입되어 현실감과 역사성을 더해준다. 영화와 그림, 시와 연극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 영역이 동시대 상황 속에서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가를 표현하고 싶었을 감독의 의도가 읽히는 부분이다.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역시 로버트 패틴슨이라는 배우에 대한 일반적인 호기심과 놀라움이다. <트와일라잇>에서 미소년 뱀파이어로 출연했던 로버트 패틴슨이 광기어린 눈동자와 다소 여성스런 자태로 '천연덕스럽게' 천재 화가 달리를 연기하는 모습을 보는 건 꽤 신선하다. 이건 마치 잘생긴 청춘배우로 끝날 줄 알았던 장동건이 <해안선>에 출연하면서 연기욕심있는 배우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는 데에 성공했던 케이스를 떠올리게 한다. 연기의 폭을 넓히고 싶을 땐 역시 18금 영화가 괜찮은 선택 중 하나인 듯.;;
하지만 로버트 패틴슨의 미모를 활용하고 싶은 감독의 욕심 때문이었을까, 영화는 둘 사이의 애정행각을 묘사할 때 감성과 상상력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비주얼에 집착하는 연출을 보여준다. 실내에서 촬영한 게 뻔히 보이는 보름달 아래의 낯간지러운 수중씬이나 괜시리 로버트 패틴슨의 다리를 천천히 훑어올라가는 카메라가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러한 동성애물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굳이 달리나 로르카가 아니어도 충분히 좋았을 뻔 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는 달리와 로르카가 함께 협업을 하며 시너지를 얻는 과정, 로르카가 스페인어로 시를 읊고 달리는 그림을 그리는 등 그들의 천재적 예술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다. (하지만 왠지 주객이 바뀐 듯한 느낌은 지우기 어렵다.)



주인공의 내면을 대변하고 극을 고조시키는 것은 카메라보다는 오히려 음악이다. 서로의 감정이 아슬하게 마주칠 때, 굳게 닫혀 있는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한 다음 그 문을 활짝 열어 젖힐 때, 꽤 멋진 스페인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릴 때 흐르는 음악들은 젊은 예술가들을 성장시킨 요소들이 무엇이었을지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아마도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사랑, 두근거림, 대자연, 친구들과의 대화, 암울한 시대상황에 대한 저항심 등이었을 거다. 물론 사회적으로 규탄받는 사랑이 준 자극, 두려움 등은 그들의 예술세계를 더욱 단단하고 비범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지점에서 다른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랑의 감정에 솔직했던 용기에 대한 댓가로 죽음을 맞이한 동성애자는 <브로크백 마운틴>을, 지적 예술적 감수성을 나누며 작품세계를 확장시켜 나간 광기어린 천재와 그의 연인 이야기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토탈 이클립스>를, 불운했던 시대상황(프랑스 68혁명) 속에서 혼란스러운 성장기를 보내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라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을  함께 보면 더 재밌을 듯 하다.

달리가 사랑한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