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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엄마랑 같이 보면 이건 공포영화다

지난영화 리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6. 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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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엄마>와 비슷해 변경한 제목은 살인자를 의미하는 '머더'와 비슷해 영화 분위기를 더 잘 살리는 <마더>로 탄생했다. <박쥐>는 국내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고 칸에 갔다. 호평과 혹평 속에 정신없는 <박쥐>에 반해 칸에 가서 호평일색을 받은 <마더>는 칸영화제에 다녀와서 더 관심을 받아, <박쥐>와는 반대되는 경우다. 이번에는 송강호를 제외하고, 김혜자와 원빈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그의 영화를 볼 때, 감독의 힘도 믿었지만 배우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마더>는 송강호를 고용하지 않음으로서 대부분 이 배우를 통해 표출했던 봉감독 특유의 유머를 배제했다. <박쥐>와 비교해보자면, 같은 광기를 다룬 영화지만 <마더>는 판타지풍이 전혀 없는 현실세계의 스릴러에 초점을 맞췄고, 결국 그 광기를 이기는 방법으로 도피를 선택했다는 점은 두 작품의 공통점이다. <박쥐>를 보며 소름끼치면서 긴장하게 만든 소품으로 '가위'를 택했다면 <마더>에선 '작두'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럼 <마더>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내 아들은 범인이 아니란 말이야!

 

한약재방에서 일하는 엄마(김혜자)와 둘이 사는 도준(원빈). 28살인 아들은 나이에 걸맞지 못하는 어수룩한 행동으로 엄마를 불안하게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도준에게 형사가 찾아와 느닷없이 그를 경찰서로 끌고 간다. 그 전날 밤에 죽은 고등학생 살해혐의를 받은 것이다. 술을 먹어 그 날 밤 기억이 없는 도준은 영낙없이 살인범으로 몰리고 경찰은 살해현장에서 나온 골프공 하나에 의지해 도준을 범인으로 몰아붙인다. 엄마가 형사와 변호사를 통해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그들은 이미 끝난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이 없다. 결국 엄마는 아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직접 나서기 시작한다. 아무도 믿지 말고, 스스로 범인 찾아 길을 떠나는데...




이야기꾼 봉준호. 이번에도 머리 꼭대기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전반 30분은 도준이 얼마나 엄마를 의지하고, 엄마없이 살아가는 것은 상상하지 못하는 배경위주로 진행한다. 이후 1시간은 평상시 속도로 잘 달리다가, 끝나기 30분 전 진태가 던져준 단서로 그동안 쌓아둔 연료를 몽땅 퍼부은 엄마의 폭주기관차 질주에 관객까지 숨이 막히며 대사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갈수록 집요해지는 광기에 봉준호가 던진 질문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까먹을 정도였다.

 

봉준호 감독은 내가 인정하는 몇 안되는 이야기꾼이다. 보통 하나의 탄탄한 플롯만으로도 이야기를 잘 이끌어갈 수 있지만, 봉준호 감독은 늘 2가지 질문을 던진다. <살인의 추억>에선 '누가 범인인가?' 와 '범인을 잡을까?' 였고, <괴물>에선 '괴물을 잡느냐?' 와 '현서는 살 수 있을까?' 였다. <마더>는 포스터에서부터 '엄마가 아들을 구하나?' 와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의 2가지 숙제를 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반전영화라 할만한 구성요소를 가졌다는 점도 봉준호 영화의 특징이다. <플란다스의 개><살인의 추억><괴물> 모두 예상을 살짝 뒤트는 결말로 마무리지었다. 경악을 금치 못하거나, 예상을 완벽하게 뛰어넘는 대반전이 아니기 때문에 극장을 나오면서 이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그는 늘 신선한 결말을 내놓고 높은 곳에서 우리의 호응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더>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2가지 숙제의 답을 주며 밀고당기는 줄거리를 완성시켰고, 결국 뜨겁다못해 무섭다고 표현할 만한 '모성애'로 해결한 숙제는 답안보다 힌트가 더 의외여서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가장 큰 힌트는 어릴 적 도준의 기억이 살아나면서 영화가 살짝 갓길로 빠질 때였다. 이 순간부터 도준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 되었고, 언제 생각날지 모르는 도준의 기억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여기에 단순 모자관계가 아닌 야릇한 분위기로 다양한 느낌을 주면서 이것저것 생각할 거 많은 관객에게 더 큰 피곤함을 얹어준다. 이런 짐을 시원하게 털어버릴 때 느끼는 충격은 쌓아놓은 한방이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터졌기 때문이고, 그런 이야기를 즐기는 감독에게 또 당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더(김혜자)의 힘, 원빈의 도약!

 

드라마 [전원일기]로 인해 우리나라 어머니의 대표상이 된 영남이 할머니 '김혜자'. 복길이 할머니ㅡ김수미ㅡ가 영화계에서 강한 카리스마로 휘어잡을 때, 드라마에서 현실세계 어머니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영남이 할머니는 이번에도 평범한 엄마역을 거부했다. 본질적인ㅡ희생적인ㅡ엄마는 그대로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자신에게 모든 것인 아들이 의심을 받고 있고, 사회는 그것을 그대로 묻으려 하자 모성애가 폭발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미칠 때까지 계속된 그녀의 집착은 [엄마가 뿔났다]의 히스테리컬한 모습의 극치에 달해 소름돋는, 그러나 그만큼 활활 타오른 모성애의 결과였다. 김혜자는 인간이기보다 앞선 엄마로 극적인 드라마의 완성을 달성했고, 그녀 얼굴에 있는 주름은 안성기의 그것만큼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여기에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어리숙한 미남 아들로 나온 원빈은 예측불가한 연기로 순수하면서 도발적인 '도준'의 캐릭터 옷을 맞춤형으로 입어 영화를 보는 관객이 어색함을느낄 수 없었다. 여기에 <괴물>에서 노숙자로 나와 봉준호의 눈에 든 윤제문이 자기 이름으로 출연해 영화의 한부분을 잘 살렸고, 진구는 폭력적인 캐릭터로 영화 속 주요장치를 맡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이런 배우들이 영화의 탄탄한 기둥이 되어 중심을 잘 이끈 것이 관객을 영화에 참여시키는 가장 중요요소였다.

 

ㅡ실제 배우 이름과 영화 속 등장인물 이름이 대부분 같거나 유사하다ㅡ




봉준호 감독한테 농락당했다. 근데 기분은 좋다

 

<마더>라 해서 어머니 모시고 갔다가 영화 끝나고 나서도 오싹한 기운에 한동안 말을 붙이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은 엄마란 존재의 위대함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게 한 무시무시한 영화를 만든 것이다. 엄마가 자신에게 가하는 결말은 무서움의 최고조에 이른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한계까지 보여주며 소름끼치게 만든 봉준호 감독은 이번 영화로 흥행기록을 달성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김혜자 손에 피까지 묻히고, 18세 관람가를 받을 연출까지 했겠는가! <마더>는 <괴물>의 흥행으로 인한 부담감을 털어버리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만의 색채에 더 가깝게 다가갔다. 사회적 약자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보고, 냉소적인 현재 제도를 비꼬는 방식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봉테일에 걸맞는 연출은 영화의 모든 장면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봐야 내용을 앞서 생각할 수 있고, 모든 음악을 순간적으로 멈추면서 우리 호흡도 멈추고 스크린에 빠져드는 마력을 지녔다. 봉준호가 가장 잘하는 방식에 걸려든 것이다.

 

의심되는 용의자를 하나씩 추적하며, 그 사람이 사건과 어떤 식으로 연관됐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깔아놓은 복선이 어떤 건 낚시용이고, 어떤 건 대박감인지 모를 정도로 봉준호 감독은 관객을 갖고 논다. 김혜자가 진구의 이야기와 도준의 입에서 나오는 범인이 한 행동의 추측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범인에 대한 의구심을 확 풀어준다. <마더>는 범인이 누구인가보다 '범인을 어떻게 찾았는가' 과정이 얽혀있어, '○○○가 범인이다'라고 까발리는 게 아니고 '○○○○해서 범인인 거 맞지?' 확인하는 절차를 밟게 하는 봉준호. 근질거리는 손가락을 스스로 막으면서ㅡ확 쓸까?ㅡ이미 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재미가 이렇게 좋은지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p.s 영화는 여러 궁금증을 해결하지 않은 채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만약 영화 속에 들어갈 수 있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건 도준의 허벅지를 보는 것이다. 그의 허벅지는 말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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